의사와 간호사는 친절했다. 내부 시설도 깨끗했다. 겉으론 흠잡을 데가 없었다. 그런데 의외의 곳에서 문제가 보였다. 병원이 입주한 건물의 주차관리원이 특별한 재주를 갖고 있었다. 방문객으로 하여금 다시는 오고 싶지 않게 만드는 재주였다. 무엇이 문제인지 딱 꼬집어 말하기는 모호한데 은근히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만드는 기술(?)이었다. 왕따보다 ‘은따’가 더 기분 나쁘다고 하지 않던가?
생각해보면 주차관리원 입장에선 방문객이 많으면 귀찮을 수 있겠다. 기계식 주차장이니 차를 넣고 빼는 것을 계속 도와줘야 하니까. 그렇게 되면 재미있는 유튜브를 시청하는 데 방해가 되겠지. 그로선 방문객 수를 적절하게 줄이는 것이 슬기로운 행동일 수도 있으리라. 그래서 그런 디마케팅(demarketing) 기술을 습득했을까? 그런데 주차는 방문객의 첫인상과 마지막 인상을 좌우하는 매우 중요한 경험이다.
후배에게 주차관리원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랬더니 그는 화들짝 놀라며 말한다. “아니, 그럴 리가요. 그분, 정말 예의 바르고 깍듯한데요.”
문득 구맹주산(狗猛酒酸)이라는 고사가 떠오른다. 개가 사나우면 술이 시어진다는 뜻이다. 송나라에 술 장사꾼이 있었다. 술 빚는 재주가 좋고 친절하며 정직하게 장사를 하는데도 술이 잘 팔리지 않았다. 술도가임을 알리는 깃발을 높이 걸었지만 술은 팔리지 않고 시어 버리기 일쑤였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그가 동네 어른을 찾아가 이유를 묻자 의외의 답이 나왔다. “당신네 개가 너무 사나워 술 심부름 오던 아이들을 모두 쫓아버린다”고 했다.
이런 맹구(猛狗) 즉 사나운 개는 어디든지 존재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맹구가 자기 밥그릇을 챙겨주는 주인에게는 지극정성으로 잘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주차관리원이 후배에게는 무척 잘했나 보다. 그래서 후배는 그저 좋은 분으로만 여겼으리라. 송나라 술 장사꾼도 아마 놀랐을 것이다. 자기에게는 꼬리치며 귀엽게 구는 개가 그렇게 무섭게 변할지 몰랐을 테니 말이다.
맹구는 이처럼 주인의 눈을 멀게 해 맹주(盲主)를 만든다. 자기 밥그릇만 챙기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사람은 눈과 귀가 멀게 된다. 사람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타인을 평가한다. 그래서 내게 극진히 잘하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것이다.
어느 조직이나 맹구는 있는 법. 식당 사장이 믿고 카운터를 맡긴 친척이 고객이나 다른 직원을 함부로 대할 수 있다. 또는 사장의 일거일동을 파악하고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운전기사가 마치 자신이 사장인 것처럼 횡포를 부릴 수 있다.
이런 현상은 정치권에서도 종종 발생한다. 지도자는 자신이 아끼는 사람이나 가까운 사람만 쓰면 안 된다. 듣기 좋은 말 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면 정작 세상 돌아가는 판세나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구맹주산은 전국시대의 한비자가 간신배를 사나운 개에 비유해 한 말이다. 간신배 때문에 어진 신하가 모이기 어렵고 그래서 정사를 올바르게 펼칠 수 없음을 꼬집은 것이다.
고객에게 최고의 경험을 제공하려면 조직에 존재하는 맹구를 찾아내야 한다. 눈과 귀를 활짝 열고 주위를 살펴보라. 맹구를 찾아내라. 맹구가 보이지 않는다면 의사 후배처럼 외부 사람의 도움을 받아라. 다행히 맹구를 찾았다면 우선 그의 태도와 행동을 바꿔라. 맹구의 사나운 짓을 통제하는 시스템도 만들어라. 그래도 정 안되면 맹구를 제거하라. 혹시 맹구를 찾지 못했는가? 그렇다면 한번 자신을 돌아보라. 혹시 내가 맹구는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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