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에서 때아닌 재벌 개혁 논쟁이 시작된 것은 다음달 전당대회에 맞춰 강령 개정 작업에 들어가면서다. 김 의원은 지난 13일 전국대의원대회준비위원회 강령분과 토론회에서 “당 강령에 명시된 재벌 개혁과 금산분리 문구를 빼자”고 제안했다. 민주당 경제 부문 강령에는 ‘지배주주의 사적 이익 편취 방지, 지배구조 개선, 금산분리 원칙 견지, 부당 내부거래 해소 등의 재벌 개혁을 추진하며, 불법적 경제행위에 대한 징벌을 강화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김 의원은 “최근 개정된 공정거래법에 문구 내용이 대부분 반영돼 있고, 대기업 집단의 자체적인 노력으로 인해 상당 부분 개선되고 있다”며 “글로벌 경쟁이 강화되고 세계 경제가 과도기 측면으로 들어간 현 상황에서 한국 대기업의 소유와 경영이 일치된 시스템이 되레 강점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김 의원은 대표적 ‘친이재명계’로 분류된다. 야권의 대표적 정책통으로 꼽히는 최병천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도 19일 SNS에서 “재벌과 대기업 개념을 구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자 당 대표에 출마한 강훈식 의원이 이를 공개 비판하고 나섰다. 강 의원은 18일 SNS를 통해 “‘재벌’이라는 단어가 주는 이념적인 느낌과 달리 재벌 행태는 철저히 민생의 문제”라며 “진정한 쓸모 있는 민주당이 되려면 국민들이 원하는 민생에 관심을 기울이면서도 그 문제를 유발하는 구조적 문제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반박했다. 또 다른 당권 주자인 박용진 의원 역시 “재벌 개혁을 빼자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진보의 정체성’을 주장했다. 또 “김병욱 의원이 이재명 의원의 측근인데 이 의원도 같은 생각일까 궁금하다”고 덧붙였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재벌 개혁이 후보 간 ‘선명성 경쟁’으로 옮겨가는 양상이다.
정치권에서는 이 같은 논란이 20여 년간 이어져온 민주당의 정책 정체성을 바꿀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민주당계 정당이 재벌 개혁을 경제정책 주요 방향으로 앞세운 것은 노무현 정부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는 ‘재벌 중심 경제구조를 혁파하고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2011년엔 민주통합당이 출범하면서 ‘재벌과 대기업에 대한 근본적 개혁’을 강령에 새겼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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