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남한강이 흐르는 경기 양평군 강하면에 한 남자가 삽과 곡괭이를 들고 나타났다. 틈만 나면 와서 묘목을 한 그루씩 심었다. 그러기를 20여 년. 나무들은 하늘 높이 뻗어 메타세쿼이아숲을 이뤘다. 당시 1만㎡이던 논과 밭은 이제 3만3000㎡의 대지가 됐고, 그 위엔 여덟 동의 노출 콘크리트 건축물이 세워졌다.
이곳은 ‘(무엇이든 담을 수 있는) 빈 상자로서’라는 뜻의 복합문화공간 이함(以函)캠퍼스다. 지금도 자동차 트렁크에 흙 묻은 삽과 각종 장비를 싣고 다니며 20여 년의 꿈이 담긴 공간을 느릿느릿 설계해온 그 남자는 오황택 두양문화재단 이사장(74)이다. 지난 19일 이함캠퍼스 개관일에 만난 오 이사장은 “문화를 담는 빈 상자로서 누구나 예술과 문화로 채워가는 공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세웠다”고 했다.
성공한 사업가가 500억원의 사재를 쏟아부어 서울 외곽에 미술관을 열었다고 하면 일반인의 반응은 뻔하다. ‘그동안 모은 컬렉션을 보관하는 창고이자 뽐내기 위한 공간 아니겠냐’는 것. 이함캠퍼스는 이런 예측을 뒤집는다.
건물은 건축가인 김개천 국민대 교수가 20년 전 지었다. 당시만 해도 국내에 몇 안 되는 노출 콘크리트를 소재로 한 건물로 땅 모양과 빛과 물이 조화를 이루는 ‘선(禪)의 건축’을 구현했다. 완공 후에도 건물은 비어 있었다. 오 이사장은 “무엇을 담을지, 사람들에게 뭘 줘야 할지 오래 고민했다”고 했다.
그 해답은 작년에야 찾았다. 오 이사장이 한 전시회에서 만난 미디어아트에 반해 작가들을 직접 섭외했다. 상업적 미디어아트 분야에서 활약하는 아티스트그룹 사일로랩은 약 10년간 나이키 현대자동차 포르쉐 벤츠 현대백화점 롯데월드타워 넷플릭스 젠틀몬스터 등과 협업해온 30대 청년들이다. 온전히 자신들의 이름을 건 단독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다.
“동시대 사람들이 열광하는, 예술적 영감을 줄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했어요. 남들이 하지 않으면서 다른 미술관들이 할 수 없는 우리만의 것을 찾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사일로랩의 ‘풍등’ 작업을 보고 무릎을 탁 쳤지요.”
“오늘이 내가 돈을 버는 마지막 날인 것처럼 장사했어요. 장사는 2등이 되는 순간 죽는 것이고, 오로지 1등만 살아남는 것이니까요. 외줄 타기 하는 것 같은 시간이었는데, 그 중 유일한 낙이라면 예술에 가까이 가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는 젊을 때부터 인사동 화랑에서 틈틈이 그림 보는 일을 삶의 에너지로 삼았다. 예술적 감성은 어릴 때부터 있었다고 그는 회상한다. 수학보단 시와 수필을 더 좋아했고, 초등학교 때는 유일하게 컬러로 인쇄된 자연 교과서 속 꽃들에 가슴이 뛰었다. 인생의 대부분을 사업가로 살면서 그의 마음을 다잡아준 것도 예술과 인문학이다. 자연스럽게 안목이 생겼고, 국내외 경매시장과 해외 벼룩시장을 돌며 빈티지 디자인 가구와 희귀 포스터 등을 사들였다.
“문화는 이제 소비재가 아니라 생산재입니다. 한 나라의 수준은 높은 안목을 가진 사람들이 결정짓습니다. 기업은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만드는 게 숙명이지요. 문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즐기는 사람들의 취향이 다양해지고, 안목이 높아질수록 창작의 수준도 올라가는 것이니까요.”
그는 평생 일군 사업도, 재단을 설립해 인문예술을 지원하는 일도 “그저 잘난 것 없이 묵묵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했다. 이함캠퍼스를 통해 많은 이에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나누고 싶다고도 했다.
두 시간에 걸친 대화의 끝에 그는 ‘인생의 1도’에 대해 이야기했다. “비슷한 DNA를 갖고 태어난 형제들도 자라면서 달라지죠. 인생이란 어떤 시기에 1도만 방향이 바뀌어도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됩니다. 건명원이 청년들에게 인문학적 소양을 심어주는 일도, 이함캠퍼스가 젊은 작가를 지원하고 동시대 사람들에게 새로운 문화예술을 경험하게 해주는 것도 ‘인생의 1도’를 다르게 하기 위한 목적입니다. 우리 안에 내재한, 세상을 바꿀 돌연변이를 기다리는 셈이지요.”
양평=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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