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프리즘] 대우조선 근로자 死地로 몬 장본인들

입력 2022-07-21 17:35   수정 2022-07-22 00:11

‘위험한 생산 현장에서 최저임금도 안 되는 월 200만원 남짓의 월급밖에 못 받는 나라.’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노조의 파업 현장에 붙은 플래카드 내용이다. 종교계 인사들도 앞다퉈 현장을 방문해 “헐값 노동에 대한 생존권 보장책을 마련하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여기엔 대우조선은 산업은행이 운영하는 회사이고, 정부가 주인인 최대 주주가 책임져야 한다는 ‘프레임’이 깔려 있다.

‘사회적 약자’인 하청회사 노조원이 가로·세로·높이 1m의 ‘철제 감옥’에 한 달째 들어가 농성하는 모습은 충격적이다. 그만큼 반향도 크다.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는 “산업은행이 지난해 낸 2조2000억원의 이익 가운데 5%인 1200억원이면 1만2000명 하청노동자 전체의 임금 인상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런 여론을 등에 업고 민노총은 이번 사태를 1100만 비정규직 노동자의 생존권 문제로 탈바꿈시켜 전국 단위 파업의 명분을 얻어내는 정치 투쟁의 모멘텀으로 키워냈다.

그렇다면 현재 대우조선 옥포조선소에서 벌어지는 비극의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시간을 3년 전인 2019년 9월로 옮겨보자. 당시 민노총은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 인수를 ‘재벌 특혜’라고 주장하며 매각 저지 전국대책위원회를 결성했다.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과 면담해 기업결합 반대 의견서를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한국 조선업을 지키는 길”이라는 명분도 걸었다.

당시 정부는 어떠했나. 독과점 이슈가 걸려 있는 국제적인 기업결합 승인 문제는 당사국 정부끼리 외교적으로 매듭을 지어야 할 사안이다. 하지만 대우조선과 현대중공업의 합병을 매듭짓기 위해 이전 정부는 얼마나 총력을 기울였을까.

올 1월 EU가 합병 불승인 결정을 내리자 산은 내부에선 “EU와의 담판을 제대로 짓지 못한 책임은 정부에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공정당국도 EU를 설득하는 대신 합병이 물 건너갔다는 얘기만 되풀이했다. 당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노동계 반대를 무릅쓰고 매각을 밀어붙이는 건 자살행위라며 한술 더 떴다.

그 2년 전인 2017년 3월로 다시 시계를 돌려보자. 당시 대우조선 정상화를 위해 소집된 산업경쟁력 관계장관회의에서는 “대우조선의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주인찾기’가 필수적”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이렇게 해서 추진된 대우조선 매각 작업은 2019년 3월 현대중공업과 산업은행의 인수 본계약으로 이어졌다. 계약 내용을 보면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에 최대 2조5000억원을 투입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고용안정 보장 조건도 명문화했다.

계약이 지켜지고 뉴머니가 투입됐더라도 하청업체 근로자의 생존권까지 보장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이후에도 조선 불황은 이어졌다. 대우조선은 지난해 1조7546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납품 대금을 ‘선의’로 올려주려고 해도 그 돈 역시 공적자금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대우조선해양은 ‘주인’ 없는 적자 기업이다. 이것이 이번 사태의 본질이다. 지금 대우조선의 재무 경쟁력으론 생존할 수 없다. 지난 정부에서 5년 전에 내린 결론이다. 당시 노동계 반대에 밀려 이를 매듭짓지 못한 대가를 지금 치르고 있다. 그런데 이전 정부의 정책 책임자들은 왜 모두 꿀 먹은 벙어리들인가.

대우조선의 국제 신뢰도는 이번 사태로 완전히 금이 갔다. 10척이 넘는 선박을 제때 인도하지 못한 조선사에 누가 일감을 주겠는가. 이런데도 저임금의 희생자라는 민노총의 프레임에 갇힌 윤석열 정부는 이번에도 양보할 준비가 돼 있는 것 같다. 결국 대우조선은 월 수천억원의 적자를 내는 ‘국민기업’으로 남아서 산은의 구제금융을 받는 기득권 노조의 전리품으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대우조선을 이대로 둔다고 해서 근로자의 생존권이 지켜질 것인가. 결론은 이미 5년 전에 야당인 민주당 정부에서 내리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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