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 엉덩이, 아무데서나 보여줘도 되나요 [오세성의 아빠놀자]

입력 2022-07-23 07:24   수정 2022-07-23 07:25


전례 없이 이른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내리쬐는 뙤약볕에 낮시간 야외 활동이 어려워지면서 딸아이와 함께 퇴근 후 저녁 산책을 나가는 게 일상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저녁을 먹은 뒤 근처 공원으로 나가는데, 낮 동안 실내에만 있던 딸아이는 이리저리 뛰어다니기 바쁩니다. 아직 어리기에 뛰다 넘어지기도 하지만, 그마저도 즐거운 듯 웃으며 탁탁 털고 일어납니다.

한껏 뛰고나면 엄마아빠 손을 잡고 걷기도 하고, 지나가는 강아지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도 하고, 쪼그려 앉아 개미들이 다니는 모습을 진지한 눈빛으로 관찰하기도 합니다. 잠시 벤치에 앉아 과자와 물을 먹으며 쉬기도 하지요.

공원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사이, 아무도 모르게 커지는 것도 있습니다. 바로 아이 기저귀입니다. 아이를 안았을 때 기저귀가 커졌다는 게 느껴지면 지체없이 갈아줘야 합니다. 더 어릴 때는 피부가 약해서 탈이 날까 갈아줬다면, 이제는 넘칠까봐 갈아줍니다. 물병을 한 번 주면 바닥이 드러나도록 마시는 탓에 언제 기저귀가 백기를 들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방이 트인 공원에서 기저귀를 갈 곳을 찾긴 쉽지 않습니다. 기저귀를 갈 만한 곳이라고는 공공화장실 뿐인데, 실제 이용하려면 진땀을 빼게 됩니다. 남자 화장실은 기저귀 교환대가 없는 곳이 태반이기 때문이죠.

2010년 ‘공중화장실 등에 관한 법률’ 개정에 따라 휴게시설 또는 철도역 등의 신설 공중화장실 등에는 영유아용 기저귀 교환대를 남자·여자 화장실에 각각 1개 이상 설치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조성된 화장실에는 기저귀 교환대 설치를 강제할 방법이 없는 게 현실입니다. 사후 설치가 이뤄져도 여자 화장실에 한정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설치가 되어 있는 경우에도 문제가 발생합니다. 대부분의 기저귀 교환대가 오가는 사람들이 모두 볼 수 있는 개방된 공간에 설치됐기 때문입니다. 성별을 불문하고 타인의 시선이 오가는 장소에서 공개적으로 기저귀를 갈긴 거부감이 듭니다.

사정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화장실 자체는 기저귀 교환대를 고려하지 않은 채 지어졌으니 뒤늦게 설치하려 해도 장소가 마땅치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기저귀를 갈아주려면 화장실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아이 엉덩이를 보여주라는 결론까지 받아들이긴 어렵습니다.

결국 아이를 데리고 나갈 때는 공원까지 차량으로 이동하고, 기저귀를 갈아야 할 때면 차량에서 갈아주고 있습니다. 간혹 장애인 화장실에 기저귀 교환대나 유아 의자가 설치되어 있는 곳이 있는데, 그런 곳에서는 감사한 마음으로 화장실을 이용합니다. 주변 시선도 차단되고 공간도 여유로운 덕에 쉽고 빠르게 기저귀를 갈아줄 수 있죠.

주변 육아 선배들에게 이러한 고민을 전하자 자신도 같은 고민을 했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한 육아 선배는 "화장실 칸에서 스쿼트 자세를 하고 아이 기저귀를 갈아봤다"며 "미국에서 유행하던 방법인데 급할 때 써먹을 만 하다"고 말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몇년 전 유행했던 '스쿼트포체인지(#Squatforchange)' 운동이 있더군요. 미국의 상황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양입니다.

다른 육아 선배는 아이를 돌보기 어려워 자신은 공원을 가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별도의 유아휴게실이 마련된 대형 쇼핑몰로 산책을 간다고 하더군요. 기저귀를 갈기도 편리하고 쇼핑몰 화장실에는 유아용 변기 커버도 마련되어 있다고 합니다.

쇼핑몰에서 산책을 할 수 있냐고 되물으니 요즘에는 야외에 아이들을 위한 놀이시설을 구비하거나 건물 옥상에 잔디정원을 마련한 쇼핑몰도 많다고 하더군요. 얘기를 들으면서 약간 씁쓸했습니다.

'불편해서 아이와 공원을 가지 않는다'는 말의 주어를 바꾸면 '불편하게 만들어 아이를 공원에서 쫓아냈다'가 됩니다. 지자체가 시민 편의를 위해 조성한 공원이지만, 관심과 배려가 약간 부족한 탓에 아이들이 소외되는 결과를 만든 셈이죠.

여자 화장실보다 남자 화장실에 기저귀 교환대와 유아 의자를 둬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아이 몸무게는 10kg을 훌쩍 넘어서는데, 야외에서는 매번 엄마가 기저귀를 갈아주니 손목이 남아나질 않는다는 것이지요. 공공시설을 관리하는 지자체들의 보다 깊은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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