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을 계기로 윤석열 정부 첫 대규모 특별 사면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가석방 상태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사진)의 사면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이 부회장은 오는 29일이면 형기가 만료되지만 사면을 받지 못할 경우 취업 제한에 걸려 향후 5년간 경영 복귀가 불가능해진다. 대규모 인수합병(M&A)은 물론 삼성전자 회장직 승계까지 당분간 불투명해질 수밖에 없어 경제계는 이 부회장 사면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가장 큰 관심을 받는 건 이 부회장의 사면 여부다. 그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지난해 1월 징역 2년6개월의 형을 확정받았다. 같은해 8월 형기의 60% 이상을 채우고 가석방 요건을 갖춰 풀려났다.
가석방은 석방 후에도 형기가 유지되는 것이 특징으로, 해당 기간 법무부의 보호관찰을 받아야 함은 물론 주거지를 바꾸거나 해외로 출국할 경우 미리 신고해야 한다. 가석방 대상자의 형기가 만료되면 보호관찰도 종료된다. 국정농단 수사 초기인 2017년 2월 구속돼 이듬해 2월까지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기간을 포함하면 이 부회장의 형기는 오는 29일 만료된다.
그럼에도 경제계 등에서 이 부회장의 사면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계속 나오는 이유는 형기 만료 후에도 유지되는 취업 제한 규정 때문이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에 따라 5억원 이상 횡령·배임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경우 징역형의 집행이 종료된 이후에도 5년간 해당 사안과 관련된 기업에 취업할 수 없다. 사면을 못 받을 경우 오는 29일 형기를 다 채운다 해도 2027년 7월29일까지 이 부회장은 삼성에 취업이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반대로 사면의 경우 형 선고의 효력을 없앨 수 있다. 또 통상 복권과 함께 이뤄지기 때문에 취업 제한이 풀리게 된다. 이 부회장의 공식적인 삼성전자 경영 복귀가 가능해진다는 뜻이다.
한덕수 국무총리, 권성동 국민의힘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 등도 경제인 사면이 국내 경기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고 언급하면서 분위기를 조성했다. 대한상공회의소를 비롯한 경제 단체들도 사면 필요성을 적극 알리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 부회장의 사면 계획을 묻는 질문에 대해 "과거부터 사면 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범위로 한다든지 그런 것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반도체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어 이 부회장 역할이 어떤 형식으로든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찬희 삼성준법감시위원장 역시 지난달 "글로벌 기업인 삼성의 최고경영진이 재판 때문에 제대로 경영을 할 수 없다면 결국 국민이 피해를 보는 것"이라며 "결단을 내려주셨으면 하는 생각"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준법위는 이 위원장의 발언이 개인적 의견일 뿐, 공식 입장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지만 그동안 재계에서 이어온 요청과 맥을 같이 했다는 평가다.
삼성 측에서는 이 사안에 대한 언급을 극도로 꺼리고 있지만 재계에서는 빠르면 올 하반기, 늦어도 내년 초 이 부회장이 경영 일선에 복귀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삼성 내부적으로는 이 부회장의 경영 복귀를 위한 준비에 돌입한 것으로 파악된다. 지난해 글로벌 컨설팅업체인 보스턴컨설팅그룹으로부터 지배구조 개편 컨설팅을 받은데 이어 지난 3월에는 지배구조 전문 컨설팅업체인 머로우소달리(Morrow Sodali) 출신의 오다니엘 이사를 IR팀 부사장으로 영입했다. 오 부사장은 지배구조 전문가다.
올 연말에 복귀한다면 이건희 회장이 그룹 2대 회장에 올랐던 12월1일, 또는 삼성전자 창립기념일인 11월1일 등의 가능성이 점쳐진다. 내년으로 넘어갈 경우 3월에 삼성그룹 창립기념일이 있다.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의 경영복귀가 완료되는 시점에 맞춰 총수 부재로 지체됐던 삼성그룹의 대규모 투자와 빅딜이 진행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이 꾸준하게 밝혀왔던 대규모 M&A에 대한 윤곽도 이 부회장 복귀에 발맞춰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대기업 임원 출신 한 인사는 "대놓고 말은 못하지만 삼성 내부적으로 이 부회장의 직책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있다"며 "'부회장'이라는 직책으로 해외 출장 등의 업무를 계속 수행하는 것 자체가 삼성이 여전히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라는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고 봤다.
그러면서 "물론 해외서도 이 부회장이 누군인지는 당연히 다 알지만 계약을 하거나, 큰 건을 진행할 때 직급이 '체어퍼슨'(chairperson)인지, 바이스(vice) 인지는 경영 의전상 격을 맞출 때도 복잡해지는 문제"라고 주장했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 국정농단 수사 과정에서 이 부회장이 '삼성에는 앞으로 회장직이 없을 것'이라고 직접 말한 적이 있어서 이 부분이 회장 승계에 부담이 될 수 있다"며 "반면 재계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과거와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으니 국가 경제를 위해서라도 부회장 직함을 떼고 '반도체 보국'을 확실하게 할 수 있도록 회장에 올라야 한다는 의견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이어 "이 부회장 스타일이 상당히 보수적이고, 눈에 띄는 걸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만약 사면을 받는다면 연내 회장직 승계를 바로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며 "반도체, 바이오, 디스플레이 등 삼성의 여러 현안에서 성과부터 낸 뒤 상황을 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부연했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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