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이상하다는 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가 있는 주인공 우영우(박은빈 분)는 서울대 로스쿨을 수석 졸업한 뒤 법정에서 활약하는 유능한 변호사이기도 하다. 불편과 능력의 정도가 저마다 달라 ‘스펙트럼’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그의 장애명처럼 우영우에게는 장애인, 전문직, 여성, 청년 등 여러 정체성이 있다. 그러나 누군가 ‘정상인’이 그에 대해 설명해주기 전까지 의뢰인이나 택시 기사, 동료의 지인은 우영우를 그저 장애인으로만 보고 말조차 건네지 않는다. 그는 이런 사회를 겪으며 ASD를 포함한 정신 질환자는 ‘살 가치가 없는 아이’로 구별했던 나치를 떠올린다. 이상한 건 세상일까 우영우일까.
《정상은 없다》는 문화가 어떻게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고 사회가 정의한 정상에서 벗어난 이들을 배제해 왔는지 탐구하는 책이다.
저자 로이 리처드 그린커는 미국 조지워싱턴대 민족지학연구소장이자 정신보건을 연구하는 문화인류학자다. 하버드대에서 사회인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조지워싱턴대에서 인류학 등을 가르치고 있다. ASD가 있는 딸을 키운 경험을 인류학자의 관점으로 풀어낸 《낯설지 않은 아이》 등을 썼다. 2006~2011년 한국에서 최초로 ASD에 대한 대규모 역학 연구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린커는 ‘정신의학자 집안’에서 태어나 자랐다. 증조부는 19세기 후반에 신경학자이자 정신과 의사로 활동했고 조부는 시카고대에 정신의학과를 설립한 인물이다. 아버지도 정신과 의사다. 그러나 그는 정신과 의사가 되지 않았다. 정신 질환을 치료하는 데 가장 큰 장벽은 병원 밖 사회에 있다고 봐서다.
해마다 미국 성인 중 20% 정도에 해당하는 6000만 명 이상이 정신 질환을 겪는다. 하지만 치료에 접근하는 건 소수다. 전문가들이 꼽는 가장 큰 원인은 ‘낙인’이다. 정신 질환자는 모두 위험하고 열등한 존재라고 낙인찍는 사회적 분위기가 환자들을 움츠리게 만든다. 오죽하면 국립정신건강연구소장을 지낸 스티븐 하이먼은 정신 질환자에 대한 낙인을 “국제적인 공중보건 위기”라고 했을까. “정신 질환을 숨길 수 없을 때는 주위의 숙덕거림을 통해 낙인을 경험하거나 따돌림과 괴롭힘, 공격 그리고 일자리나 주거지를 비롯한 많은 기회의 박탈을 통해 낙인의 위력을 느낀다.”
책은 애초에 ‘정상성’이란 환상에 불과하다고 잘라 말한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고,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기준은 사회·문화마다 달라 일관성도 없다. 예컨대 한 사회는 동성애를 정신이상으로 보고, 다른 사회는 그걸 범죄로 보지만, 또 다른 사회는 그것을 인간 발달의 정상적인 부분 또는 자연의 일부로 본다. “오랫동안 우리는 사회에 누구를 받아들이고 누구를 거부하는지 결정하기 위해 ‘정상’이라는 개념을 썼으며, 이제 정상이라는 것이 유해한 허구임을 깨달을 때다.”
이렇게 반문하고 싶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정신 질환이라는 개념 자체가 불필요하다는 것이냐고. 책은 정신 질환을 명명하고 치료하는 것과 낙인은 다르다고 설명한다. 예컨대 전쟁에서 돌아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호소하는 군인에게 적절한 치료를 제공하는 것과 ‘나약하다’는 낙인을 찍는 건 다른 문제다. 정확한 진단이 오히려 낙인을 지우는 경우도 있다. 스스로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라고 의심하던 한 학생은 ‘너는 ADHD가 아니고,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을 뿐’이라는 아버지 때문에 병원에 가지 못한다. 성인이 된 후에야 치료를 시작했다. 그는 “ADHD로 진단받은 날이 신입생 시절 중 최고의 날”이었다며 그 이유를 “사람들이 내가 멍청하거나 게으르지 않고, 더 나은 성과를 위해 치료가 필요할 뿐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되었기 때문”이라 말한다.
책은 사회가 정신 질환자에게 낙인을 찍게 된 역사를 ‘자본주의’ ‘전쟁’ 등의 키워드로 분석한다. 600쪽에 달하는 분량이 만만치는 않지만 《한중록》에 기록된 조선 사도세자의 ‘화증(화병)’까지 언급하는 성실한 조사와 풍부한 사례 덕에 수월하게 읽을 수 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열광하면서 장애인의 권리에는 무심한 사회. 이 간극이 이상하다고 느끼는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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