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치 '뚝뚝'…동대문·명품 플랫폼의 굴욕

입력 2022-07-24 17:14   수정 2022-07-28 18:12

국내 패션 플랫폼 1위인 무신사는 요즘 리쿠르트(채용) 시장을 주목하고 있다. 시장에 나올 정보기술(IT) 개발자를 대거 빨아들이기 위해서다. 무신사는 지난해 115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거두는 등 현금 및 현금성 자산(1865억원)만 전년 대비 두 배 증가했다.

반면 동대문 의류 상권에 기반한 지그재그, 에이블리, 브랜디 등 3사는 차별화 없는 출혈 경쟁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머스트잇, 트렌비, 발란 등 명품 거래 중개를 표방한 플랫폼도 마찬가지다. 컨슈머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 심리마저 빠르게 식으면서 패션 플랫폼의 옥석 가리기가 본격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업 가치 떨어지는 명품 플랫폼
24일 패션업계에 따르면 위기감이 빠르게 퍼지고 있는 대표적인 분야는 명품 플랫폼이다. 투자 유치를 꾸준히 탐색하고 있는 발란만 해도 기업가치를 8000억원에서 7000억원으로 낮춘 것으로 알려졌다. 벤처캐피털업계 관계자는 “투자 라운드가 거듭될수록 기업가치가 올라가는 것이 상식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발란의 사례는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트렌비도 당초 목표보다 낮은 3500억원 내외의 기업 가치로 투자자를 모집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명품 플랫폼의 인기가 식은 데엔 모바일 이용자 수가 감소하고 있다는 점이 작용했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가품 논란이 끊이지 않는 데다 인플레이션으로 수입 물가가 올라가면서 해외 브랜드 수요가 줄고 있다”고 지적했다.
비슷한 사업모델 난립이 원인
동대문에 기반한 패션 플랫폼들도 마찬가지다. 카카오에 인수된 지그재그가 그나마 인공지능(AI)에 기반한 맞춤형 패션 추천으로 버티고 있지만, 여전히 영업손실을 면치 못하고 있다. 에이블리 역시 여전히 적자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에이블리만 해도 업계에선 지그재그의 카피캣이라는 얘기가 파다하다”며 “비즈니스 모델이 거의 같은 스타트업끼리 동대문 의류 시장이라는 한정된 공급자를 놓고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들 3사는 동대문의 저렴하고 트렌디한 의류를 무료로 배송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없다. 브랜디가 2019년 서울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루배송’을 시작하자 지그재그는 ‘직진배송’으로 에이블리는 ‘샥출발’로 따라왔다. 플랫폼 간 차별점이 없는 만큼 소비자들에게 쿠폰을 제공해 가격 경쟁을 펼치고 있다.
돈줄 마르는 컨슈머 스타트업계
전문가들은 패션 플랫폼의 옥석 가리기가 시작됐다고 입을 모은다. 1020세대 남성을 겨냥해 패션 커뮤니티에서 시작한 무신사는 탄탄한 ‘펀더멘털(기초체력)’을 바탕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무신사 관계자는 “무신사 이용자 중 여성 고객 비중이 절반을 넘는다”고 설명했다. 7000여 개에 달하는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를 비롯해 타미힐피거 등 글로벌 빅브랜드까지 입점시키면서 종합 패션몰로 성장 중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 같은 양극화 현상은 컨슈머 스타트업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작년까지만 해도 컨슈머테크에 대한 벤처캐피털 등의 투자금액은 3조7771억원으로 전체의 31.4%를 차지했다. 하지만 올해(6월 말 누적 기준)는 1조2656억원으로 22.2%로 떨어졌다. VC업계 관계자는 “돈줄이 마르기 시작하면 패자가 나올 수밖에 없고, 생존하는 승자가 시장을 독식하는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배정철 기자 bj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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