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구조가 건전한 기업들이 주로 실시해오던 무상증자가 단순히 주가를 띄우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각종 악재에 직면한 증시 상황에서 주주 친화정책이란 탈을 쓰고 있지만 국내 증시에 혼란만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선 투자금 회수 등을 막기 위해 무상증자를 악용하고 사례까지 나타나고 있다.
무상증자는 기업이 주식을 새로 발행하되 돈을 받지 않고 기준 주주들에게 공짜로 나눠주는 방식이다. 상장사들이 이익잉여금을 자본금으로 이동시켜 신주를 발행하는데, 회사가 실적이 좋아 쌓인 돈이 많을 때 주주 가치를 높이기 위해 단행한다.
다른 의도 숨겨져 있기도
코스닥업계 IR 담당자 A씨는 "요즘 같은 하락장에서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무상증자를 결정한 상장사가 몇이나 될지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주주를 위한 선택이 아닌 회사 이익을 위한 꼼수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는 "전환사채(CB) 등 회사채 투자자들의 투자금 회수 기회나 대주주들의 (주식담보 대출)반대매매를 막기 위한 조치일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특히 "회사채 투자자들의 주식 전환을 유도하기 위해 급하게 무상증자를 결정한 회사도 많다"며 "투자자들이 보유 중인 회사채 조기 상환을 요구하게 되면, 회사 입장에선 빌린 돈을 돌려줘야 하기 때문"이라고 부연했다. "현금이 많거나 실적이 꾸준히 나오는 회사의 경우 큰 문제가 없지만, 적자 기업의 경우 투자금 회수 시점이 도래하면 최후 수단으로 무상증자를 카드를 만지작거린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메지온은 지난 3월 미국 식품의약국(FDA) 신약 허가가 불발될 위기에 놓이자 1주당 2주 배정하는 무상증자를 결정한 바 있다. 신약허가를 조건으로 발행했던 전환사채(CB)가 발목을 잡으면서다. CB투자자들이 조기 상환을 요구할 경우 재무건정성이 더욱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 탓에 무상증자로 CB 행사가보다 주가를 띄워, 주식 전환을 유도하려 했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A씨는 무상증자를 결정한 상장사들의 재무 건전성과 대주주의 주식담보 대출 현황을 살펴볼 것을 조언한다. 그는 "1대 5 또는 1대 8 등의 무상증자 결정은 투자보단 투기로 보는 것이 맞다"며 "최근 무상증자를 결정한 종목 중에서 몇 년째 영업적자를 기록하는 곳도 수두룩하고, 외부 자금으로 버티는 상장사들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달 무상증자 결정과 함께 큰폭으로 주가가 뛴 셀리버리와 이노시스는 매년 영업손실을 기록 중이다. 셀리버리는 2018년 성장성 추천 특례 상장 이후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례 기간(5년)이 만료되는 내년 이후부턴 영업이익을 내야 한다. 2015년 기술특례로 증시에 입성한 이노시스도 5년 연속 영업손실을 기록하고 있다.
투기성 테마주 인식 우려도
하지만 무상증자가 일종의 테마주로 자리잡으면서 쉽사리 이를 추진하지 못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최근 시장에선 무상증자가 투기성 테마로 번지고 있다"며 "일부 상장사들이 무상증자를 남발하면서, 정작 무상증자가 필요한 기업들은 주저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큰 맘 먹고 결정한 무상증자 효과가 정치 테마주처럼 단기에 끝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실제로 근래 무상증자가 투기 테마로 악용되고 있는 사례가 적지 않다. 무상증자를 요구하며 지분을 사들인 뒤 주가가 오르자 매도해 차익을 실현한 '슈퍼개미'까지 등장했을 정도다. 이 슈퍼개미는 신진에스엠에 '경영권 참여와 무상증자 요구'를 외치며 소액 투자자를 현혹시킨 뒤 주가가 오르면 주식을 팔아치우는 수법으로 11억원이 넘는 차익을 챙겼다. 피해는 소액투자자들이 입었다. 당시 장중 1만3800원까지 치솟았던 신진에스엠은 슈퍼개미의 차익실현 이후 급락하며 현재 8500원대에 거래 중이다. 주가가 40% 가까이 급락한 것이다.
류은혁 한경닷컴 기자 ehry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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