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승욱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국내 조선업계에 남긴 '마지막 선물'이 화제다. 문 전 장관이 퇴임을 앞둔 지난 5월 카타르 ‘도하 담판’을 통해서 원가 상승으로 수조원의 손해를 볼 수 있었던 액화천연가스(LNG)선 선가를 인상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조선업계 추정에 따르면 국내 조선 3사(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는 당시 도하 담판으로 약 4조원의 비용을 아낄 수 있을 전망이다.
국내 조선 3사와 카타르 정부의 LNG운송선 계약은 2020년 6월에 맺어졌다. 당시 카타르 정부의 LNG 증산 계획에 따라 추가 생산되는 LNG를 운송할 LNG선 건조를 국내 조선 3사에 맡기기로 했다. 당시 카타르 정부와 국내 조선 3사는 약 100척의 LNG선 건조를 위한 슬롯(도크)을 예약하는 계약(DOA)을 체결했다. DOA 계약 당시 LNG운송선 국제 신조선가는 한척당 1억8600만 달러로, 조선 3사도 이 가격을 기준으로 했다. 이후 카타르는 DOA계약 후 1년4개월이 지난 작년 10월 이후 국내 조선업계와 본격적인 선박 건조 계약에 나섰다.
하지만 100척이 넘는 선박 발주로 국내 조선업계 부활의 신호탄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카타르 LNG선 프로젝트는 조선업계에 악몽이 됐다. 슬롯 예약 계약 체결 당시보다 원자재 값이 급등하면서 후판 가격이 2배 이상 올랐기 때문이다. 후판 가격은 전체 LNG선 제조 원가의 약 20~25%에 달한다. 후판값 상승이 LNG운송선 제작 원가를 약 20% 이상 상승시킨 셈이다. 보통 5~10% 마진율을 기준으로 선가를 책정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후판 값이 2배 뛰면서 배 한척당 10% 이상 손해가 생기게 됐다는 의미다. 국내 조선3사는 선박을 건조할수록 손해를 보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이에 조선 3사는 작년말 카타르 정부에 선가를 상향해 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카타르 정부는 선가 인상은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협상은 교착상태에 빠졌다. 조선업계의 지원 요청으로 이같은 상황을 알게 된 문 전 장관은 지난 3월 카타르 정부에 서한을 발송한 뒤 4월 중순 곧바로 카타르를 찾아 사드 빈 셰리다 알카비 카타르 에너지 장관을 직접 만났다. 문 전 장관은 국내 조선업계가 처한 상황을 설명하고 선가 인상이 불가피함을 호소했다. 국내 조선사의 마진 구조를 설명하고, 손해를 보지 않은 수준에서 최소한의 가격만 올리는 것이라는 점을 설득한 것이다. 또 한국이 카타르에서 생산하는 LNG의 주요 수입국이라는 점과 에너지 분야에서 협력·우호관계를 이어가자고 강조했다. 이에 카타르 정부는 마음을 돌려 선가 상승에 합의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카타르는 선가가 오르고 있어서 국내 조선사들이 카타르와의 계약을 이행하지 않고 더 높은 선가를 제안한 다른 선주와 계약을 맺으려 한다고 오해를 한 것 같다"며 "이를 문 전 장관이 담판으로 풀면서 교착상태에 빠졌던 LNG선 협상이 다시 재개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 전 장관이 다녀간 이후 카타르 정부는 국내 조선 3사와 협상을 재개, 선가·선박사양·선박을 운용할 해운사 등에 관한 협상을 속속 마무리했다. 지난 6월 3일 현대중공업 2척, 6월 5일 대우조선해양 4척의 건조 계약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건조계약을 이행 중이다. 현재까지 조선 3사의 카타르 프로젝트는 28척의 계약이 이뤄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3사에서 카타르 프로젝트 관련 계약된 선가는 한척당 2억1500만 달러로, 슬롯 계약 당시 신조선가인 1억8600만 달러와 비교하면 약 3000만 달러를 올린 셈이다. 선가 상승으로 이미 1조1000억원 이상의 손실을 만회하는 효과가 발생했다는 게 조선업계의 설명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계획대로 100척 이상의 발주가 이뤄지면 도하 담판으로 4조원 이상의 손실 만회 효과가 생기는 셈"이라며 "퇴임을 앞두고 있던 문 전 장관이 국내 조선업계를 위해 큰 선물을 주고 떠났다"고 말했다.
이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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