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외환보유액이 한 달 만에 94억3000만달러 감소했다. 넉 달 연속 감소세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후 최대 폭으로 줄었다고 해서 뉴스가 됐다. 외환보유액(39억달러: 1997년 12월 18일)이 바닥 나 경제 위기를 맞았던 한국으로선 외환보유액 증감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외환보유액은 중앙은행과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대외 외화 채권의 총액을 말한다. 한국과 같은 비기축통화국은 외환을 충분히 보유하려고 한다. 급격한 자본 유출이나 대외 차입 불능 사태에 대비하는 안전장치이기 때문이다.
외환보유액은 작년 10월 4692억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한 뒤 줄어드는 추세다. 지난 6월 말 현재 4382억8000만달러로 8개월 사이 309억달러나 감소했다.
가장 큰 감소 원인은 환율 방어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해 10월 말 달러당 1168원60전에서 올 6월 말 1298원40전으로 상승했다. 이달 들어서는 1300원을 넘어섰다. 이 과정에서 외환당국은 환율이 급격하게 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 달러를 팔고 원화를 사들인 것으로 추정된다.
외환보유액을 구성하는 통화의 상대적 가치 변동에 따라서도 외환보유액이 감소할 수 있다. 작년 말 기준으로 미국 달러화 비중은 68.3%다. 나머지 30%가량은 유로화, 엔화, 파운드화, 위안화 등이다. 외환보유액 규모는 달러를 제외한 다른 통화의 가치까지 달러로 환산해 계산한다. 따라서 달러 가치가 상승하면 나머지 통화의 달러 환산 가치가 하락해 외환보유액이 줄어들 수 있다.
주요 6개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 인덱스는 작년 10월 말부터 올 6월 말까지 11.2% 상승했다. 이를 바탕으로 계산하면 외환보유액 중 달러를 제외한 나머지 통화의 달러 환산 가치가 160억달러 정도 줄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결국 같은 기간 환율 방어에 투입한 외환보유액은 150억달러 안팎으로 추산된다. 경제 불안, 미국 금리 인상, 한국의 경제 불안에 따라 달러가 유출되는 것도 원인 중 하나다.
국제통화기금(IMF)이 권고하는 기준도 있다. 연간 수출액의 5%, 광의통화(M2)의 5%, 유동 외채의 30%, 외국인 증권 및 기타 투자금 잔액의 15% 등을 합한 금액의 100~150%가 적정하다는 것이다. 이 기준과 비교한 2021년 말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98.9%로 다소 모자란다. 한국의 외환보유액 순위는 중국 일본 스위스 인도 러시아 대만 홍콩 사우디에 이어 9위다.
외환보유액을 아무리 많이 쌓아도 막상 위기가 닥쳤을 땐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 외환보유액이 감소하기 시작하면 규모와 상관없이 감소했다는 사실 자체가 위기 징후로 인식돼 외환이 썰물처럼 빠져나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국가 디폴트(채무 불이행) 사태가 올 수도 있다.
따라서 일정 수준 이상의 외환보유액과 함께 경상수지 흑자 기조를 유지하고 재정 건전성을 높여 대외 신인도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 등 선진국과 통화 스와프를 맺는 것도 원화의 불안정성을 보완하는 수단이 된다. 지난 3월 말 기준 한국은 6960억달러의 순대외금융자산과 4257억달러의 순대외채권을 보유하고 있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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