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은 지난 21일 그룹경영회의를 열고 ‘현금 확보’에 총력을 기울일 것을 사장단과 전 임원에게 지시했다. 경기 하강 속도가 빨라질 것에 대비해 현금을 비축하라는 주문이다. 지난달 말 포스코그룹의 현금을 포함한 유동성은 17조9390억원으로 3월 말보다 1조6450억원 줄었다.
최근 시장금리가 치솟으면서 기업의 ‘돈가뭄’이 심해지고 있다. 기업이 보유한 유동성은 올 들어서만 10조원 넘게 감소했다. 자금줄이 말라붙으면서 재무구조가 취약한 일부 기업의 신용 리스크도 커지고 있다.
기업 유동성이 급감한 것은 최근 자금시장 경색 흐름과 맞물린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 들어 7월 25일까지 회사채 발행액은 53조4292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72조8323억원)에 비해 26.6% 줄었다. 역대 회사채 발행액 기준으로도 2018년(47조8642억원) 이후 4년 만에 가장 적었다.
올 들어 7월 25일까지 회사채 순발행액(발행액에서 상환액을 제외한 금액)은 6조7372억원에 불과했다. 작년 같은 기간 순발행액(25조9283억원)에 비해 74.0%(19조1911억원)나 줄었다. 올해 회사채 순발행액은 2017년(1월 1일~7월 25일) 후 5년 만에 가장 적었다.
회사채 발행시장이 꽁꽁 얼어붙은 건 시장금리가 급등한 탓이 크다. 이날 오전 회사채 AA-등급 금리는 연 4.062%로 전 거래일보다 0.073%포인트 하락했다. 이날은 내렸지만 작년 최저치(2021년 8월 19일·연 1.790%)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한국은행이 지난 7월 기준금리를 연 1.75%에서 연 2.25%로 인상하는 등 시중 유동성을 흡수하는 긴축 정책을 이어간 영향이다.
부채비율이 1000% 안팎으로 치솟은 저비용항공사(LCC)는 ‘울며 겨자 먹기’로 고금리로 자금을 빌려 근근이 버티고 있다. 지난 3월 말 부채비율이 925%에 달한 제주항공은 5월 채권형 신종자본증권(영구채) 630억원어치를 발행했다. 이 영구채 금리는 연 7.4%로 결정됐다. 발행 후 1년 뒤인 내년 5월부터는 금리가 연 12.4%로 껑충 뛴다. 3월 말 부채비율이 1431.5%인 에어부산도 지난 19일 사모 영구 전환사채(CB) 100억원어치를 연 5.9~8.9%에 발행했다.
시장금리가 치솟으면서 일부 한계기업의 신용 리스크도 부각될 전망이다. 22일까지 하도급업체 노조 파업으로 8000억원대 손실을 본 대우조선해양의 자금난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3월 말 기준 대우조선해양의 단기차입금은 2조7280억원에 달한다. 높은 부채비율(523.2%)로 추가 자금조달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최대주주인 산업은행의 지원이 없다면 연내 유동성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고금리 기조가 이어질 경우 한계기업이 줄도산 위기에 처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중소기업 두 곳 중 한 곳은 번 돈으로 이자도 갚지 못하는 ‘좀비 기업’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상반기 기준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인 대기업 비중은 22.5%, 중소기업은 48.4%에 달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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