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는 겨울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러시아가 또 다시 노골적인 '자원 무기화'에 나섰다. 독일에 공급해오던 가스를 평소의 40% 수준으로 낮추더니 이번에 다시 그 절반인 20%로 감축했다. 지난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이후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전방위적으로 러시아를 제재하자 맞대응에 나섰다. 이 같은 소식에 25일(현지시간) 런던ICE거래소에서 유럽 천연가스 가격의 기준인 네덜란드 TTF 천연가스 8월물은 전 장보다 12% 가량 상승해 MWh(메가와트시)당 179유로에 거래됐다.
유럽에선 에너지 공급량 감소세가 길어지고 올 겨울 본격적인 난방철이 시작되면 불가피하게 다시 러시아산 에너지로 손을 뻗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하반기 에너지 수요를 걱정한 EU 회원국들은 벌써부터 EU 집행위원회가 제시한 에너지 감축 계획에 반발하는 등 사분오열하고 있다.
가스프롬은 "노르트스트림1의 포르토바야 가압 기지에 있는 독일 지멘스제 가스 터빈 엔진 2개 중 하나가 가동을 멈춰 점검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서방의 제재도 직접 언급했다. "EU 제재와 관련한 문제들의 해결 여부가 수리를 맡긴 가스 터빈 엔진의 조속한 반환과 다른 터빈 엔진들의 긴급한 수리를 위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러시아가 부품수리를 핑계로 가스 공급을 중단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달 16일 "서방 제재로 캐나다에 수리를 맡긴 터빈이 반환되지 않고 있다"며 노르트스트림1 가스 공급량을 평소의 40% 수준으로 줄이겠다고 밝혔다. 이달 1일엔 "11일부터 열흘 동안 정기점검 작업을 위해 노르트스트림1 가동을 전면 중단한다"고 했다. 21일 가스관을 다시 열었지만, 공급량은 평소의 40% 수준으로 줄어든 채였다. 이번에 불과 나흘 만에 공급량을 다시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한 것이다.
포르투갈, 스페인, 그리스, 이탈리아, 폴란드 등은 "회원국별로 에너지 비축분과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가 다른 상황에서 동일한 감축 비중을 짊어져야 하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가 높은 독일 산업계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도 목소리를 높였다. 경제력이 약하거나 국가부채 비율이 높은 국가들의 경우 가스 수요 감축으로 더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부담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로이터통신은 이날 "EU 회원국 외교관들이 15% 감축 계획을 완화하는 수정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로이터가 확보한 수정안 초안에 따르면 가스 사용 감축에 대한 자발적 목표 설정 방안은 유지하되 의무적 감축 목표에 대해서는 다양한 면제를 적용하기로 했다. 회원국별로 서로 다른 의무 감축 목표치를 두게 된다는 의미다. 집행위는 26일 에너지장관급 이사회에서 수정안에 대한 최종 승인 여부를 결정한다.
미국이 수출한 LNG의 상당량은 유럽으로 유입됐다. EIA에 따르면 EU의 LNG 수입량은 올 상반기에만 63% 늘어나 일평균 148억 큐빅피트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중 47%는 미국이 공급했으며, 아프리카 4개국(17%), 카타르(15%), 러시아(14%) 순으로 뒤를 이었다. 특히 1∼5월 미국 LNG 수출량의 약 71%는 EU와 영국으로 갔을 만큼 유럽의 미국산 LNG 의존도가 높아졌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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