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초까지 영국의 법화는 소브린(sovereign)이라고 불리는 금화였습니다. 각종 은행권은 금화로 바꿀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반 시중은행 신용에 문제가 생기면 관련 은행권의 가치는 종잇조각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러던 중 1833년 영국 정부의 국채를 관리하던 영란은행이 법화의 지위를 부여받게 됩니다. 1844년에는 영란은행만이 은행권을 발행할 수 있다고 규정한 필조례(Peel's Bank Act)가 제정됩니다.
필조례는 크게 두 영역으로 구성됐습니다. 하나는 각 은행의 은행권 발행 최고 한도를 1400만 파운드로 정하고 은행들의 발행권이 상실될 경우 그 발행권을 영란은행이 계승하게 해 궁극적으로 영란은행이 영국 내 은행권 발행을 독점하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한 은행에서 이뤄져 온 은행 업무와 발행 업무를 구분해 발행업을 은행업으로부터 분리한 것이었습니다. 현재와 같이 한국은행과 조폐공사가 나뉘어 업무를 수행하는 형태가 필요하다고 본 겁니다.
필조례가 제정된 이면에는 시중은행들의 은행권 발행에 대한 재량권을 박탈해 은행권의 유통량을 금속 통화의 유통량과 비슷 또는 동일하게 유지하기 위한 의도가 있었습니다. 이는 은행권을 과다하게 발행하면 경제공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은행권의 발행을 금의 유출입양에 비례하게 조절해야 한다는 통화주의적 시각이 반영된 것입니다.
필조례의 목적은 금본위제와 같은 맥락으로 통화 유통량을 제한해 화폐 과다 발행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경제위기를 예방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필조례는 공황을 예방하는 데 영향을 미치지 못했고 오히려 유동성 공급을 제한해 공황을 심화시키는 역기능을 초래하기도 했습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홍기훈 홍익대학교 경영대 교수, 메타버스금융랩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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