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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은행부터 핀테크 스타트업까지, 최근 몇 년 새 잇따라 알뜰폰 시장에 진출하는 금융사가 부쩍 늘고 있다. 은행이 알뜰폰 사업자와 손 잡고 자사 고객을 위한 전용 알뜰폰 요금제를 내놓는가 하면, 아예 직접 브랜드를 만들고 알뜰폰 사업을 시작한 곳도 있다. 알뜰폰 시장이 왜 '금융 고래'들의 격전장이 됐을까.
토스, 100억대 투자해 알뜰폰 업체 인수
토스 운영사 비바리퍼블리카는 지난 21일 중소 알뜰폰 업체인 가상이동통신사업자(MVNO) '머천드코리아' 지분을 100% 인수하는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인수금액은 100억원대로 알려졌다.토스는 간편송금 서비스로 출발, 은행·증권·보험 등 금융 분야에서 영역을 확장하며 국내 네 번째 데카콘(기업가치 10조원 이상인 스타트업) 등극을 눈앞에 둔 국내 대표 스타트업이다. 지난해에는 차량 호출 앱 '타다'를 인수하며 모빌리티 사업에 진출하기도 했다. 이런 토스가 두 번째 금융 사업으로 알뜰폰을 선택한 것이다.
알뜰폰은 MVNO가 통신3사 등 이동통신사업자의 통신망을 도매가로 빌려 소비자에게 최대 40% 싸게 통신 상품을 제공하는 서비스다. 2012년 본격 등장해 가입자 수 1150만명(사물인터넷(IoT) 회선 포함), 알뜰폰 사업자 수 70여개의 시장으로 성장했다.
비바리퍼블리카가 인수한 머천드코리아는 1998년부터 20여년간 통신사업을 운영해온 중소기업이다. 현재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모두와 계약을 맺고 알뜰폰 요금제를 운영 중이다. 가입자는 약 10만명,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170억원, 12억원 수준(2020년 기준)이다.
토스는 인수 절차가 마무리되는 대로 이르면 오는 9월중 토스 앱을 통해 알뜰폰 서비스를 선보일 예정이다. 알뜰폰 요금제 검색, 본인확인과 가입, 개통, 결제 등 모든 과정을 토스 앱 안에서 끝낼 수 있도록 서비스를 설계한다. 소비자가 통신 서비스까지 토스 앱에서 해결하도록 해 '수퍼 앱'으로서의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구상이다. 토스 관계자는 "온라인 가입이 대부분인 알뜰폰 특성상 편리한 가입절차, 최적 요금제 검색 기능, 토스의 브랜드 인지도 등이 합쳐지면 알뜰폰 시장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선봉' 국민은행은 알뜰폰 가입자 30만 확보
알뜰폰 시장에 진출한 금융사는 토스가 처음이 아니다. 국민은행은 2019년 12월 금융위원회로부터 혁신금융서비스 지정을 받아 금융권 최초로 알뜰폰 사업 '리브엠'을 시작했다. 리브엠은 알뜰폰 최초로 5세대(5G) 이동통신 요금제와 웨어러블 요금제를 도입하고, 국민은행 금융상품과 연계해 우대금리·요금할인 등 다양한 혜택을 선보였다. 그 결과 리브엠은 출범 2년 반 만인 지난 5월 가입자 30만명을 돌파한 것으로 알려졌다. LG유플러스의 통신망만 제공하고 있던 리브엠은 최근 KT까지 제휴 통신망을 확대했다. 하반기에는 SK텔레콤 통신망도 확보하겠다는 계획이다.
간접적으로 알뜰폰 서비스를 출시한 은행들도 있다. 신한은행은 KT망을 쓰는 중소 알뜰폰 사업자 네 곳과, 하나은행은 SK텔레콤 자회사 SK텔링크와 손잡고 전용 알뜰폰 요금제를 운영하고 있다.
통신데이터로 신용평가 정교하게
금융사들이 이처럼 알뜰폰 서비스에 눈독을 들이는 것은 통신업과 금융업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해서다. 통신 관련 데이터는 비금융 데이터 중에서도 개인의 신용 평가에 활용할 여지가 높은 고급 정보로 꼽힌다. 가령 A라는 사람이 어떤 휴대폰 요금제를 쓰는지, 통신사 가입 기간은 얼마나 되는지, 통신요금을 매달 꼬박꼬박 내는지, 데이터 평균 사용량은 얼마나 되는지, 휴대폰 소액결제를 얼마나 쓰는지 같은 정보는 개인의 신용을 보여주는 지표가 될 수 있다. 해외에서는 휴대폰 이용자가 언제, 어디서 통화를 더 많이 하는지 같은 통화 패턴까지 분석해 대안신용평가에 활용하는 사례도 있다.
금융 거래는 안 하는 사람은 있어도 휴대폰을 안 쓰는 사람은 많지 않다. 금융 거래 이력 자체가 부족한 대학생이나 사회초년생, 전업주부 같은 이른바 '신파일러(thin filer)'도 이런 통신 정보를 활용하면 금융사가 보다 정확하게 신용을 평가할 수 있다. 기존에는 '블랙박스'였던 신파일러들을 분석하고 고객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셈이다.
개인사업자에 대한 신용평가도 통신 데이터를 활용할 여지가 많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가입자의 이동 패턴 정보, 해당 상권 내 소비자 특성 정보, 요금 납부 정보 등을 활용하면 매출액을 추정하고 이를 기반으로 신용평가를 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했다.
통신 데이터를 활용한 대안신용평가는 국내에서도 이미 활발하다. 핀테크 기업 핀크는 2019년 SK텔레콤과 손잡고 통신비 사용내역 기반의 비금융 신용평가 모형 '핀크 T스코어'를 개발했다. 금융 이력이 부족한 사회 초년생이 주요 대상이다.
금융위원회 1호 대안신용평가사 인가를 받은 핀테크 스타트업 크레파스솔루션도 고객의 통신 서비스 사용 패턴을 포함한 모바일행동성향 데이터를 기초로 신용평가를 해준다. 그리고 이 결과를 금융사에 공유, 기존에는 은행 대출을 받기 어려웠거나 실제 상환 능력보다 비싼 금리를 내야 했던 씬파일러도 대출 조건을 개선할 기회를 제공한다.
카카오뱅크 케이뱅크 토스뱅크 등 인터넷은행도 자체 개발한 대안신용평가모형(CSS)에 통신 데이터를 활용하고 있다. 우리은행 하나은행 등은 가입자의 '통신 등급'을 기준으로 대출을 내주는 전용 상품도 운영하고 있다.
현재는 금융사가 통신 3사와 제휴를 맺고 일부 데이터를 제공받아 금융 서비스 운영에 참고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토스나 국민은행처럼 알뜰폰 사업을 통해 가입자의 통신 데이터를 직접 확보할 수 있다면 데이터 활용도를 훨씬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알뜰폰 가입자 절반 MZ세대 '락인' 효과도
고객을 묶어두는 '락인' 효과 측면에서도 긍정적이다. 금융상품과 연계한 할인 요금제 출시, 통신요금 자동결제 우대 등 금융·통신 서비스를 다양하게 결합해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뿐 아니라 금융사간 '수퍼 앱'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자체 앱으로 알뜰폰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경쟁력이 될 수 있다.젊은 층을 중심으로 신규 고객 유입 효과도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물가 급등으로 생활비 부담이 커지는 가운데 이른바 MZ세대의 알뜰폰에 대한 관심도 커지는 추세다. 이동통신조사 전문기관 컨슈머인사이트에 따르면 작년 하반기 연령대별 알뜰폰 가입자는 10대 5%, 20대 25%, 30대 24%로 집계됐다. 10~30대 비중(54%)이 1년새 8%포인트 증가하며 처음으로 절반을 넘어섰다.
컨슈머인사이트는 "알뜰폰은 더 이상 '어르신폰'이 아니다"라며 "사실상 20대가 알뜰폰 주류세대로 떠올랐다"고 했다. 가입 이유로는 월 요금이 저렴하고(53%), 자신에게 맞는 요금제가 있기 때문(36%)이란 응답이 많았다.
개인 알뜰폰 시장은 성장 잠재력도 높다는 게 금융사들의 판단이다. 알뜰폰 가입 회선 수는 1150만개에 달하지만, 이 가운데 40%가 넘는 약 450만 회선은 스마트워치, 스마트카, 태블릿PC 등 IoT 기기를 연결하는 통신회선이다. 토스 관계자는 "전체 이동통신시장 가입자의 약 14%만 알뜰폰 회선에 가입되어있다"며 "개인고객 성장 잠재력이 크다"고 했다.
금융사의 통신 서비스 진출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디지털 시대에 맞지 않는 금융 규제들을 걷어내고 금융·비금융의 융합을 촉진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금융사가 통신 유통 등 IT·플랫폼 관련 영업과 신기술 투자를 활발하게 할 수 있도록 업무 범위 제한을 완화하겠다고 약속했다.
빈난새 기자 binther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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