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문자 노출 사태’를 계기로 집권 여당이 정부 출범 2개월여 만에 대혼돈에 빠져들고 있다. 여권 지지율이 추락하는 가운데 이번에는 비상대책위원회 출범 등 차기 지도체제를 두고 당이 분열하고 있다. 친윤(친윤석열)계인 배현진 의원이 29일 최고위원직을 던진 게 비대위 전환 여론에 불을 붙였다. 배 의원은 사퇴를 선언하면서 “마땅히 책임져야 하고 끊어내야 할 것을 제때 끊어내지 않으면 더 큰 혼란이 초래된다”고 했다.
정치권에선 대표 대행체제를 교체하기 위한 압박이란 해석이 나왔다. 하지만 권성동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비대위 체제에 선을 그은 데다 지도체제를 두고도 의원들 간 정치적 셈법이 달라 내홍은 더 깊어질 전망이다.
또 다른 당권주자인 안철수 의원도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준석 대표의 의혹이 해소될 때까지는 대행 체제로 갈 수밖에 없다”면서도 “(의원총회에서 권 대행 체제가) 재신임이 안 되면 조기 전대로 가야 한다. 다른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초선 의원들도 가세했다. 국민의힘 초선 의원들은 이날 성명서를 내고 “당의 혁신을 위해 최고위원직을 던진 배 의원의 결기를 높이 평가한다”며 “현 상황에서 최선의 방법은 신속히 비대위 체제로 전환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초선 의원 63명 중 32명이 동참했고 박수영 유상범 박성민 등 친윤계 의원도 대거 참여했다. 한 초선 의원은 “지지율이 계속 떨어지는 상황에 권 대행이 대표와 원내대표직을 모두 수행하는 건 무리”라고 말했다.
지난 8일 이준석 대표 징계 직후만 해도 비대위는 수습책으로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5년 만에 정권 교체를 이룬 상황에서 비대위를 꾸리기엔 정치적 부담이 컸다. 하지만 이 대표를 비판한 윤석열 대통령의 메시지가 권 대행의 부주의로 노출된 이후 지도체제 개편 요구가 거세졌다. 권 대행은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 박탈) 합의 번복, 대통령실 ‘사적 채용’ 논란 관련 실언으로 사과한 데 이어 또 머리를 숙였다.
이를 놓고는 해석이 분분하다. ‘최고위원 전원 사퇴’와 총원(9명)에서 자진 사퇴한 김재원 전 의원 및 징계받은 이 대표를 뺀 7명 가운데 과반인 4명만 사퇴하면 된다는 주장이 맞붙고 있다. 권 대행은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일부가 사퇴한 상태에서 비대위가 구성된 전례는 없다”고 일축했지만, 오후 들어 비대위 체제를 반대하지 않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최고위원도 ‘전원 사퇴’ 해석에 무게를 뒀다. 이 대표와 가까운 김용태 최고위원은 이날 “대법원 판례는 (최고위원이) 총사퇴해야 최고위 기능 상실로 본다”며 “1명이 남아도 원칙적으로는 최고위가 유지된다”고 말했다. 조수진 최고위원도 “‘비대위로 가려면 전원이 사퇴해야 하는 수밖에 없다’는 말씀을 드렸다”고 말했다. 당 사무처는 전원 사퇴에 해석의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대위에 동의하는 한 중진 의원은 “자진 사퇴일 때만 기능 상실로 해석한다면 최고위원이 1명만 남아 주요 안건을 의결해도 된다는 의미냐”며 “과반을 못 채우면 의결이 무의미하기 때문에 기능이 상실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양길성/고재연 기자 vertig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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