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조력자살 허용 전에 연명의료 결정 대상부터 넓혀야"

입력 2022-07-31 17:23   수정 2022-08-01 00:16


30년 넘게 암 전문의로 일한 허대석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는 6000명 이상의 죽음을 직·간접적으로 봐왔다. 환자 치료를 떠나 이상적으로 삶을 마무리하는 길이 무엇인지 고민이 클 수밖에 없었다. 그가 연명의료결정법 제정에 크게 기여한 존엄사 전문가가 된 배경이다.

허 명예교수는 “현장에서 보면 연명의료결정법을 개선·발전시켜야 할 사항이 적지 않다”며 “의사조력자살은 이후에 논의해도 늦지 않는다”고 했다. 대표적으로 임종기 환자를 대상으로 연명의료 결정(중단 또는 보류)을 하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거의 유일하다는 것이다. 국제표준은 적어도 말기 환자까지 연명의료 결정 대상에 포함한다. 말기란 적극적으로 치료해도 회복 가능성이 없고, 2~3개월 내에 임종을 맞을 것으로 예상되는 상태를 말한다. 허 교수는 “의사들조차 임종기와 말기 환자를 구분하기 어렵다”며 말기 환자에게도 연명의료 결정 혜택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해외 사례를 보면 영국·독일·호주는 물론 대만도 2019년 식물상태 환자 등으로 연명의료 결정 대상을 확대했다.

다음으로 의료기관윤리위원회가 설치된 병원이라야 연명의료 결정을 내릴 수 있는데, 문제는 상급종합병원(주로 대학병원)에만 윤리위가 있다는 점이다. 일반종합병원(53.6%), 요양병원(4.6%), 소규모 일반병원(1.5%) 등에선 윤리위 설치 비율(연명의료 결정 참여율)이 극히 낮다. 이들 병원에서 임종을 맞는 환자의 상당수는 연명의료 중단 자체를 요구할 수 없는 실정이다. 국내 만성질환자 20만 명 중 40%인 8만2000명이 이런 소규모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130만 명 넘게 작성했다고 해도 실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허 교수는 “세계 어디도 윤리위 설치를 전제로 연명의료 결정을 하는 나라는 없다”며 시급히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만성질환자에 대한 호스피스(간병서비스) 분야도 후진적이다. 한국 사람의 평균 기대수명은 일본에 이어 세계 2위(83.5년)지만, 이 가운데 17.2년은 병으로 고생한다는 통계가 최근 소개됐다. 허 교수는 “일본의 경우 보건의료 패러다임을 치료(cure)에서 돌봄(care)으로 전환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는 건강보험 선진국이고 연간 100조원 넘는 치료비용을 지출하고 있지만, 환자 돌봄은 오로지 가족 책임”이라고 했다. 이제 그런 헌신적인 가족 전통도 약해지고 있다.

이런 과제들에 대비하고 연명의료결정법을 개선한 뒤에도 문제가 있다면 의사조력자살을 고민해 볼 일이라고 허 교수는 말했다. 그는 “환자에게 무엇이 최선의 이익인지 일반상식으로도 판단할 수 있다”며 “환자의 자기결정권도 중요하지만, 생명권이 우선 아니겠느냐”고 했다. 회생 가능성 없이 누워 있는 환자라고 해서 자살을 도울 수 있도록 극약처방해주라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허 교수는 “조력자살은 삶에서 더 멀어지게 하는 일”이라며 “존엄사 보장을 위한 단계적인 접근이 중요하지, 비약이 있어선 안 된다”고 했다.

장규호 논설위원 daniel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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