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는 ‘네카라쿠배’(네이버·카카오·라인·쿠팡·배달의민족) 출신 개발자를 모시는 건 언감생심이었는데, 요즘엔 우리 같은 스타트업에도 심심치 않게 지원합니다.”(A스타트업 관계자)
올 들어 개발자 채용 시장의 분위기가 급반전하고 있다. ‘웃돈’을 얹어 개발자 뽑기에 나섰던 대형 정보기술(IT) 업체들이 이제는 연봉 상승률을 낮추고 인센티브를 줄이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경기 위축 조짐에 따라 천정부지로 치솟은 개발자 인건비에 부담을 느낀 일부 기업은 허리띠를 졸라매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로 인해 코로나19 후 극에 달했던 개발자 품귀 현상도 조금씩 풀리는 분위기다.
지난해 전 직원 연봉을 평균 13%(800만원) 인상했던 넥슨은 올해는 작년의 절반인 평균 7%로 결정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6%(6월)에 달하는 점을 감안하면 비교적 보수적인 접근이란 게 IT업계의 시각이다. ‘업계 최고 수준의 보상’을 보장하는 당근마켓도 스톡옵션 등 인센티브를 필수로 제공하지는 않는다. 입사 시 개개인별로 차이를 둬 인센티브를 주고 있다.
개발자 인력 수요가 많은 기업은 재택근무, 자율 출퇴근제 등 근무 여건 개선책으로 임금 인상 압력을 버텨내고 있다. 마켓컬리는 스톡옵션과 같은 인센티브를 주지 않는 대신 시차 출퇴근제(오전 8~11시 출근)와 매월 유급 반차 등을 도입했다.
개발자들은 낮아진 처우를 체감하고 있다. 지난 5월 이직 제의를 받은 박모씨(34)는 “연봉 인상 없이 ‘사이닝 보너스’만 제시받았다”며 “스톡옵션도 프로젝트에 성공하면 받는 조건부여서 지난해와는 상당히 달라진 분위기”라고 말했다.
기업들은 개발자 채용 인원을 줄이면서 양보다 질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선회하는 분위기다. 신입 채용은 되도록 지양하고, 검증된 경력자만 선발하는 식이다. 스타트업 관계자는 “전 직장에서 어떤 프로젝트를 성공시켰는지를 꼼꼼하게 체크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100여 명을 채용한 네이버는 올해 채용 인원을 30% 줄인다. 5~6년 차 경력직 개발자를 퇴사자 인원을 충원하는 정도로 채용한다.
일부 기업은 올해 들어 인건비를 감당하지 못해 개발자를 내보내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게임개발사 베스파는 핵심 인력을 제외한 90% 이상의 직원을 권고사직했다. 지난해 441억원의 영업손실을 낸 데 따른 후폭풍이다. 일부 스타트업은 성과를 내지 못한 개발자를 3개월 수습 기간이 끝나기 전에 자르는 실정이다.
기존 오프라인 주력사업에 온라인 사업을 결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유통기업들도 ‘인력이 더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전체 직원 1000명 중 절반을 개발자로 채운 SSG닷컴도 올해 채용 규모를 줄일 계획이 없다. 스타트업 관계자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흐름에 뒤처지면 살아남지 못한다”며 “개발자를 줄인다는 것은 사업을 포기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배정철/이승우 기자 bjc@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