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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정부도, 호로위츠도, 구글도 주목하는 웹 3.0
암호화폐 가격이 여전히 침체기를 벗어나지 못하는 중임에도 웹 3.0에 관한 관심은 국내외 모두에서 높아지는 추세다. 올해 11월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의 핀테크 박람회인 ‘싱가포르 핀테크 페스티벌 (Singapore Fintech Festival)’에서는 전 세계의 핀테크 스타트업들을 초청해 경연을 펼치게 한 후 우승자에게 상금과 투자자 연결 등 혜택을 주는 핵셀러레이터 (Hackcelerator) 프로그램이 열린다.
올해 행사 주제가 바로 ‘웹 3.0’이라고 한다. 이 박람회는 싱가포르의 중앙은행이자 금융 규제 기관인 MAS(싱가포르 통화청)에서 직접 개최하는 행사다. GDP(국내총생산)에서 금융 서비스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60%가 넘는 싱가포르인 만큼, 국가 차원에서 벌써 웹 3.0을 매우 중요한 아젠다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연초부터 주요 암호화폐 가격이 폭락하며 전체 시가총액이 50% 넘게 증발했음에도 벤처캐피털(VC)들의 웹 3.0 분야 투자 행렬은 끊이지 않는 모습이다. VC 업계에서 웹 3.0 분야 투자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안드리센 호로위츠`는 얼마 전 웹 3.0 생태계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기 위해 조성한 네 번째 펀드의 자금을 성공리에 모집했다고 밝혔다. 이 펀드에 모집된 금액이 무려 6조 원에 달한다. 구글은 클라우드 부문 산하에 웹 3.0 전담팀을 새로 신설하고 적극적으로 관련 인재들을 채용하는 중이다. 구글 클라우드 최고기술책임자(CTO)가 직접 팀을 이끈다고 한다. 그는 "웹3.0 개발자에게 구글 클라우드 플랫폼이 첫 번째 선택지가 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이런 웹 3.0을 구성하는 데 있어서 토큰(Token)은 꼭 필요한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아직 정확히 무엇이 앞으로 다가올 다음 세대 인터넷의 모습인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에서 방구석 전문가들은 흔히 웹 3.0을 ‘소유의 인터넷이라고 정의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토큰을 사용자가 인터넷을 직접 소유할 수 있는 수단이라는 설명을 덧붙인다. 토큰을 사서 스테이킹을 걸어놓는 등 무언가 이바지를 하면 그만큼 보상받는다는 '프로토콜 경제'의 개념이 적용된 것이다. 여기까지 들으면 웹 3.0의 핵심은 거의 토큰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토큰을 발행할 수 있고, 누구나 토큰을 사서 소유할 수 있으며, 누구나 토큰을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으면 그게 웹 3.0일까. 정말 토큰이 다시 인터넷을 탈중앙화 시켜주고 가치의 소유권을 사용자에게 돌려주는 매개체가 맞는 걸까.
토큰에 대한 불편한 진실
토큰이 웹 3.0의 주인공이라는 주장은 디앱(dApp) 사용자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단번에 그 약점이 드러난다. 우리가 지금 즐겨 사용하는 모바일앱 서비스들이 모두 자체 토큰을 발행했다고 상상해 보자. 내일 당신은 미국 LA로 여행을 떠날 예정이다. 아침에 일어나 준비하고 ‘분산형’ 카카오 택시 앱을 켠다. 택시를 부르기 위해서다. 근처에 있는 택시를 부르려고 하니 카카오 택시 토큰을 충전해야 한다. 귀찮음과 짜증이 밀려오지만, 거래소 앱을 켜고 토큰을 사서 충전하고 택시를 부른다. 공항에 도착해서 짐을 체크인하는데 캐리어 무게가 20kg을 초과했다. 대형 수화물에 대한 초과 비용을 내야 하는데 그러려면 대한항공 토큰이 필요하다. 여차여차 미국 LA에 도착하여 시내로 이동하기 위해 우버 앱을 켠다. 이번엔 또 우버 토큰이 있어야 드라이버를 부를 수 있다. 시내에 있는 호텔을 예약하기 위해 에어비앤비 앱을 켰더니 또 거기에선 에어비앤비 토큰이 필요하다.
이런 환경이 얼마나 살기 불편할지는 굳이 더 이상의 예를 들지 않아도 충분히 공감될 것이다. 이런 세상은 사용자가 소유하는 인터넷의 장점을 채 느끼기도 전에 최악의 사용자 경험을 안겨주고 곧바로 떠나게 할 것이다. 2000년대 초반 이후 이베이·아마존 등 온라인 쇼핑 서비스들이 급성장한 덴 평소 지갑에 들고 다니던 신용카드를 계정에 등록해 그대로 사용할 수 있게 한 것이 큰 역할을 했다. 편리한 쇼핑을 위해 지급, 결제 수단은 최대한 기존에 쓰던 익숙한 것으로 통일하고 싶은 것이 대다수 사람의 요구였다. 기업들과 기술이 그 요구에 따라 진화한 것이다.
필자는 샌드뱅크라는 서비스를 운영하며 왜 사용자 관점의 사고가 중요한지 매일같이 뼈저리게 느낀다. 사용자가 단 한 번의 클릭이라도 덜 하게 만들어 귀찮음을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해 수많은 인원이 회의하고 테스트하고 시행착오를 거친다. 기업이 만드는 제품의 가치는 사용자의 삶을 아주 조금이라도 개선하는 데서 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인터넷은 샌드뱅크같은 기업이 사용자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훨씬 더 많은 것들을 시도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해줬다. 그런데 토큰이라는 기능은 사용자에게 편리한 경험을 제공하기는커녕 오히려 불편함만 가중한다.
토큰이 안고 있는 더 커다란 문제는 기업에 정상적인 펀드레이징(자본 유치)의 단계를 건너뛰고 기업공개(IPO)를 바로 해버릴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는 점이다. 이는 사용자에게 어떤 식으로든 가치를 느끼게 해줘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스타트업의 운명에 정면으로 어긋난다. 스타트업은 아이디어와 창업가의 자질만으로 투자를 유치하는 시드(Seed) 라운드를 지나, 시리즈A·시리즈B 라운드를 거치며 전문 투자사들에 본격적으로 사업성을 평가받는다. 매출이나 회원가입자 수와 같은 지표가 잘 늘지 않는다는 건 그 회사의 제품은 사용자에게 충분한 가치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는 곧 투자유치의 실패로 이어지게 된다. 반대로 사용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포인트를 잘 캐치하여 좋은 제품을 내놓은 회사는 반드시 사용자들의 선택을 받게 되어있고 지표도 래퍼 곡선을 그리며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한다. IPO는 이 모든 과정을 통과한 뒤에 일어난다. 그 때서야 비로소 일반 투자자들도 해당 기업에 투자할 수 있는 방법이 열리게 된다.
그러나 토큰을 통한 펀드레이징은 이 모든 과정을 건너뛴다. 일단 자금부터 모으고 그 다음 제품을 만든다. ICO를 통해(NFT 민팅도 포함) 시작부터 거액의 투자금을 유치할 수 있으므로 굳이 제품의 존재가치를 사용자에게 검증받으며 하나하나 허들을 넘는 어려운 과정을 통과할 필요가 없다. 설령 ICO와 함께 그럴듯한 제품까지 내놨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가장 좋은 예가 얼마 전에 결국 파산한 셀시우스(Celsius)이다. 이곳이 파산까지 이르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결국 처음부터 토큰을 발행하여 돈을 손에 쥐고 사업을 시작한 것이 계속해서 잘못된 의사결정을 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창업가가 애초에 사기꾼이었냐 아니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구조적으로 사용자의 삶을 조금이라도 개선하는 데 집중하기 보다는 토큰 홀더들을 위해 토큰 가격을 띄우는 데 집중하게 만드는 것이 진짜 문제다.
셰이프시프트의 ‘Exit to Community’ 전략
그렇다면 토큰은 웹 3.0에서 방해물일 뿐인걸까. 2014년 정식 서비스를 런칭한 코인과 코인간 환전 서비스를 제공하는 탈중앙화 거래소(DEX) 셰이프시프트(ShapeShift)의 케이스에서 어쩌면 그에 대한 대답을 찾을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회사의 CEO인 에릭 부어히스(Eric Voorhees)는 작년 6월 별안간 셰이프시프트 법인을 완전히 해산하고 모든 경영권을 DAO(탈중앙화 조직)에 넘긴다고 선언했다. 셰이프시프트는 사용자끼리 자유롭게 코인간 거래를 하도록 만들어주는 서비스다. 지난해 트래블룰 적용 대상으로 지정되며 모든 고객의 개인정보를 수집해야 하는 KYC(Know-Your-Customer)를 의무적으로 시행할 수 밖에 없었다. 애초에 국경 없는 자유로운 코인간 거래를 도우려고 만든 사업이 규제 때문에 전통 금융산업의 범주에 갇혀버렸다. 그러자 에릭 부어히스 CEO는 서비스 자체를 주인이 없는 공공재로 만드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서비스 본래의 목적인 탈중앙성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셰이프시프트는 현재 별도로 세운 비영리재단의 주도 하에 법인 해산과 ShapeShift DAO로의 자산 이관을 진행 중이다. 이관이 완전히 끝나고 나면 셰이프시프트는 법인도, CEO도, 이사회도, 주주도, 직원도, 은행 계좌도, 우편물을 받을 사무실 주소도 없는 인터넷 상에서만 존재하는 서비스가 된다고 한다. 작년 6월30일에는 110만 명에 달하는 셰이프시프트 사용자들에게 Fox Token이라는 자체 토큰이 에어드랍됐다. 이는 당시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토큰 에어드랍이었다고 한다. 이제 셰이프시프트 서비스 운영과 관련된 의사결정은 Fox Token 홀더들이 투표를 통해 내리게 되므로 적극적인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진행된 것이다. 이 때 사용자들에게 지급된 토큰의 수가 전체 발행량의 34%에 달한다.
블록체인 업계에서는 셰이프시프트의 이런 시도를 ‘Exit to Community’ 전략이라고 부르고 있다. 원래 ‘Exit’은 일반적으로 시리즈 C, 시리즈 D, 혹은 그 이후 라운드에서 창업가가 모든 지분을 투자자에게 넘기고 나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Exit to Community 전략은 사용자에게 인터넷을 돌려주자는 본래 웹 3.0의 취지에 맞게 창업가가 모든 권력과 재산을 사용자들에게 직접 넘기고 나오는 것이다. 비록 대형 VC들에 유치하는 투자금보다는 미미한 규모로 exit 하게 될 수 있지만 기존에는 없던 새로운 시도라는 점에서 앞으로 관심 갖고 지켜볼 이유가 충분하다.
셰이프시프트가 발행한 Fox Token의 활용성은 앞서 소개한 현재 대부분의 웹 3.0 프로젝트들이 취하고 있는 토큰의 이용 방식과 몇 가지 면에서 그 형태가 다르다. 우선 셰이프시프트는 토큰 발행 이전에 이미 110만 명이라는 규모 있는 사용자층을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에 제품의 사용성이 시장에서 어느 정도 검증된 상태였다.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토큰을 발행할 수 있었고 또한 토큰의 사용처도 뚜렷했다. 서두에 예시로 든 ‘카카오 택시 토큰이나 ‘우버 토큰 처럼 사용자의 편리성을 훼손하기 위해 쓰인 게 아니라 창업가가 자신의 권력을 커뮤니티에 양도하는 수단으로 쓰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과정의 주인공은 토큰이 아니라는 것이다. KYC가 필요 없는 탈중앙화된 거래소 서비스를 계속해서 고객에게 제공하고 싶은 CEO의 고민이 법인을 해산하고 순수 DAO 체제로 전환하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 핵심이다. 이 시도가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세상에 완벽한 인간은 없다고 하지 않나. 어쩌면 이 모든 것들이 또 다른 마케팅 전략일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비트코인을 창시한 사토시 나카모토가 아직 살아있다면, 그가 여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규제의 지배를 받지 않는 진정한 탈중앙화는 자신이 존재하는 한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알아서 잠적한 것이 아닐까. 사토시는 초기에 자신이 직접 채굴한 100만여 개의 비트코인에 여전히 손도 대지 않았지만 모든 창업가에게 이런 수준의 높은 희생정신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그렇다면 웹 3.0에서는 창업가들이 좋은 서비스를 내놓고 어느 정도 사용성을 입증한 후 모든 권한과 권력을 사용자들에게 직접 팔고 떠나는 ‘Exit to Community’ 전략이 널리 활용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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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한 크립토 투자 앱 샌드뱅크(Sandbank)의 공동 창업자 겸 COO이다. 가상자산의 주류 금융시장 편입을 믿고 다양한 가상자산 투자상품을 만들어 투자자에게 제공하는 샌드뱅크를 만들었다. 국내에 올바르고 성숙한 가상자산 투자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각종 매스컴에 출연하여 지식을 전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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