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에서 통산 2승을 거둔 이준석(34·호주)은 ‘대기만성’형 선수다. 2008년 코리안투어 퀄리파잉스쿨에서 수석으로 합격하며 화려하게 등장했지만 프로무대의 높은 벽에 번번이 무너졌다. 드라이버 입스, 스윙 교정 등의 진통을 겪으며 골프를 그만둘 생각도 했다. 2020년에는 갑상샘암 수술도 했다. 그럴 때마다 그의 왼쪽 손목 안에 새긴 문신을 보며 힘을 냈다. ‘스페로 스페라(spero Spera)’. 라틴어로 ‘살아 있는 한 꿈을 꾸라’는 뜻이다.
결국 꿈을 이뤘다. 지난해 6월 한국오픈에서 우승하며 13년 만에 첫 승을 올렸고, 지난 6월 하나은행 인비테이셔널에서 우승하며 KPGA 코리안투어의 강자로 떠올랐다. 올 시즌 제네시스 포인트 2위, 평균 타수 2위(70.21), 평균 버디 수 2위(3.91)다. 충남 서산 서산수CC에서 만난 이준석은 “생각보다 일찍 우승을 거둬 목표를 다승으로 올려 잡았다”고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두 차례 우승은 많은 것을 바꿨다. 이준석은 지난해 한국오픈에서 우승한 뒤에도 시즌 내내 후원사 이름이 없는 모자를 썼다. 지난 4월부터는 우리금융그룹의 모자를 쓰고 있다. 그는 “제 가치를 알아봐주시고 높이 평가해주시는 분들이 계신다는 사실에 더없는 자부심을 느끼다”며 “그 덕분에 올 시즌 우승도 빨리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준석은 코리안투어의 대표 ‘아이언맨’이다. 그린적중률 76.96%로 코리안투어 1위를 달리고 있다. 처음부터 아이언 강자였던 것은 아니다. 항상 그의 발목을 잡던 쇼트게임을 보완하기 위해 아이언을 집중적으로 훈련했다. 지금도 하루 연습의 50%를 아이언에 할애한다. 정교한 아이언 샷의 비결은 타깃 연습이다. “연습장에 가면 150구역이 있잖아요. 저는 1, 5, 0을 각각 맞히는 훈련을 해요. 이렇게 연습하다가 그린에 가면 타깃이 확 넓어 보여요. (웃음)”
이준석은 김비오(32)와 함께 올 시즌 KPGA 코리안투어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제네시스 대상 포인트에서 90점 차로 근소하게 김비오를 앞서며 대상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는 “김비오는 저에게 ‘넘사벽(넘볼 수 없는 4차원의 벽)’ 같은 선수”라고 했다. “제가 코리안투어에 들어왔을 때 비오는 이미 톱랭커였어요. 올 들어 같은 조에서 경기하는 기회가 많았는데 볼 때마다 정말 남다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경기가 잘 안 풀릴 때도 무너지지 않고 어떻게든 버텨내고, 잘되는 날에는 쭉 치고 올라가는 힘이 좋아요.”
이준석은 더 큰 목표를 세웠다. 생애 첫 다승, 장기적으로는 코리안투어 10승 고지 달성이다. “코리안투어에서 10승을 올려 한국 골프사에서 기억에 남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올해 시작을 좋게 디딘 만큼 대상에도 꼭 도전하고 싶습니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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