亞 미술시장 '왕좌의 게임'…싱가포르 역습에 서울 긴장

입력 2022-08-01 17:31   수정 2022-08-02 01:21

싱가포르는 1990년대만 해도 아시아 미술 시장의 명실상부한 중심지였다. 세금이 낮고 행정 절차가 간단하며 영어·중국어를 공용어로 쓴다는 장점은 세계 미술시장 ‘큰손’들을 끌어모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2007년 상황은 순식간에 반전됐다. 싱가포르 정부가 미술품에 7%의 부가가치세를 부과하면서다. 싱가포르에 아시아 본부를 뒀던 크리스티와 소더비가 ‘세금 제로’인 홍콩으로 떠났고, 수백 개 외국계 화랑이 그 뒤를 따랐다. 수천 명의 일자리와 수만 명의 관광객도 홍콩으로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싱가포르가 ‘아시아 미술 시장의 왕좌’를 되찾기 위해 진격하고 있다. 소더비는 오는 28일 싱가포르 리젠트호텔에서 라이브 경매를 연다고 1일 밝혔다. 현지 경매는 소더비가 아시아 본부를 홍콩으로 옮긴 지 15년 만에 처음이다. 세계 최정상 아트페어 중 하나인 아트바젤은 최근 싱가포르에 투자하는 등 본격적인 진출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15년 만에 싱가포르 간 소더비…왜?
글로벌 미술계에선 몇 년간 ‘홍콩 엑소더스’가 화두였다. 홍콩 민주화 운동으로 정치적 불안이 심해지고 치안이 나빠지면서 외국계 화랑들의 철수가 잇따랐다. 코로나19와 이어진 중국의 과잉 방역은 홍콩에 치명타를 날렸다. 철수한 화랑들은 그 대안으로 서울과 도쿄, 싱가포르 등을 검토했다.

미술계 관계자는 “중국 컬렉터들이 급부상하고 있어 이를 겨냥한 허브 도시를 빠르게 장악하는 게 가장 큰 관심사”라고 분석했다.

먼저 승기를 잡은 건 싱가포르다. 소더비는 이번 경매에서 인도네시아 거장 헨드라 구나완의 ‘해변의 어시장’을 비롯해 중국을 대표하는 추상화가 주더췬의 작품 등을 내놓는다. 이 경매를 시작으로 싱가포르 재진출을 본격화한다는 계획이다. 아트바젤을 개최하는 스위스 MCH그룹은 올초 싱가포르 아트페어 업체인 ‘아트 이벤트 싱가포르’ 지분 15%를 사들였다.

이 같은 약진은 싱가포르의 오랜 노력 덕분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15년 전 쓴맛을 본 싱가포르는 미술 시장에 전폭적인 지원을 쏟아부었다. 2010년 창이국제공항에 연 ‘프리포트’가 대표적이다. 각종 미술품과 보석, 골동품, 고가 와인 등 사치품을 관세와 소비세 없이 거래할 수 있는 일종의 ‘미술품 보세지역’이다. 크리스티도 아시아 수장고를 이곳에 두고 있다.
서울 도쿄 싱가포르 3파전 양상
싱가포르의 약진으로 ‘아시아 미술 시장 허브’ 경쟁은 서울·도쿄·싱가포르의 3파전 양상을 띠게 됐다. 싱가포르는 중국 시장에 대한 접근성이 높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홍콩에서 철수한 중국 갤러리와 딜러 대부분은 싱가포르로 자리를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현지 미술 시장 규모가 작은 게 단점으로 꼽힌다. 일본은 컬렉터들이 보수적이고 지진 대비 때문에 전시 비용이 많이 든다는 게 흠이다. 일본 정부는 미술품 수입 절차를 간소화하고 감세 계획을 밝히는 등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한 상황이다.

서울도 여전히 유력한 후보다. 지난해 ‘세계 3대 아트페어’로 꼽히는 영국의 프리즈아트페어(프리즈)가 아시아 진출 거점으로 택했고, 해외 유명 갤러리들이 앞다퉈 한국 지점을 개설·확장하고 있다. 다만 세제 혜택 면에서는 싱가포르에 밀린다는 평가다. 미술계 관계자는 “사치품 거래 규모가 경매 시장을 키우는데, 홍콩과 싱가포르는 고가 와인 등 각종 사치품 거래세(면세 또는 0.5%)가 없다시피 한다”고 밝혔다. 한국은 보석 등 200만원을 초과하는 사치품에 부과하는 개별소비세율이 20%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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