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한국에서 탈출 시켜주고 싶다"
지난달 29일 온라인 맘카페는 부글부글 끓었습니다. 정부가 초등학교 취학 연령을 현행 만 6세에서 5세로 1년 낮추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초등학교 입학 시점을 1년 앞당기는 까닭에 대해 "교육 격차 해소"라고 설명했습니다. 박순애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사회적 양극화의 초기 원인은 교육 격차"라며 "취학 연령을 1년 앞당겨 사회적 약자 계층이 빨리 의무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또 1년 일찍 입학하게 됐을 때 청년들의 취업 시기를 앞당겨 노동 기간을 늘리는 효과도 있다고 봤습니다.
명분은 그럴듯해 보이는데요. 조기 입학 대상 연령의 아이를 둔 학부모들은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학력 격차에 대한 우려가 가장 컸습니다. 학부모 A씨는 "최대 14개월 차이나는 아이와 한 반에서 배우는 게 말이 되느냐"며 "어렸을 때 한 살 차이가 얼마나 큰 지 모르고 나온 정책"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보육 공백에 대한 지적도 나왔는데요. 학부모 B씨는 "어린이집은 오후 6~7시까지 아이를 봐주지만 초등학교는 12시면 끝난다"며 "어쩔 수 없이 아이를 학원으로 돌려야 하는데 사교육비만 늘어나게 생겼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일부 학부모들은 "우리나라의 인구구조 특성상 조기 입학 논의는 꼭 필요하다고 본다"며 중립적인 태도를 보였는데요. 그럼에도 정부의 사회적 합의 없는 일방적 발표는 문제라고 꼬집었습니다.
정부는 한 발 물러서는 모습입니다. 박 부총리는 1일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취학 연령 하향과 관련해 사회적 합의를 거치겠다"면서도 "입학 연령을 1개월씩 12년에 걸쳐 줄이는 방안도 가능하다"고 해명하면서 논란을 더 키웠는데요. 여론이 악화할 조짐을 보이자 2일 대통령실이 나서 "윤석열 대통령은 교육부에 취학연령 하향 공론화를 지시했다"며 "아무리 좋은 개혁정책이라도 국민 뜻을 거스르고 갈 수는 없다"고 밝혀 학제개편안을 백지화할 수 있음을 시사했습니다. 학부모들이 우려하는 보육 공백과 관련해선 "학교 내 방과 후 돌봄 서비스를 부모 퇴근시까지 해두자는 게 기본적 인식의 출발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논란을 키운 당사자인 박 부총리도 같은 날 학부모 단체와의 간담회에서 "국민이 정말 원하지 않는다면 정책은 폐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히며 '여론 달래기'에 나섰습니다.
학부모 단체가 들끓고 정부의 숨가쁜 브리핑이 이어지는 사이 증시에선 조용히 선반영이 이뤄졌습니다. 지난 1일 교육 관련 종목들이 일제히 상승했는데요. 학제 개편이 이뤄질 경우 사교육 시기가 앞당겨져 수혜를 볼 수 있다는 점이 호재로 작용했습니다. NE능률이 8.59% 급등한 것을 비롯해 메가엠디(8.82%), 아이스크림에듀(5.93%), YBM넷(3.66%) 등이 올랐습니다. 이튿날에도 상승세가 이어졌는데요. 특히 아이스크림에듀는 전날보다 10% 오르며 강세를 보였습니다. 국내 최초로 초등학생 스마트 학습기기를 선보인 기업이죠. 증권가에서는 "마땅한 투자처가 없는 약세장에서 교육 테마주에 매수세가 몰린 것으로 보인다"며 "성급한 추격 매수는 자제해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박병준 기자 rea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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