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편의점 GS25를 운영하는 GS리테일을 조사하기 시작한 건 2019년 10월이다. 불공정 행위 관련 신고나 제보가 없었는데도 자체브랜드(PB) 실태를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1위(매출 기준) 사업자를 겨냥해 촘촘한 그물망을 펼쳤다.
공정위는 3년에 가까운 조사 끝에 GS리테일이 다른 유통회사와 달리 간편식(도시락, 샌드위치, 삼각김밥 등) PB 제조사로부터 약 222억원(2016년 11월~2019년 9월)의 이익을 부당하게 취했다고 결론 내렸다. ‘자기 상품’인 PB를 팔면서 ‘을’의 지위에 있는 제조사에 성과장려금, 판촉비 등을 부담토록 했다는 게 공정위의 주장이다.
공정위는 편의점 본사가 기획·마케팅 등을 총괄하고 공급사는 단순 제조만 한다는 이유로 이를 원·하청 관계로 규정했다. 이에 대해 유통업계에선 공정위가 백화점, 대형마트, 편의점 등을 규율하는 ‘대규모 유통업에서의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대규모유통업법)’로는 칼을 대기 어려워 보이자 무리수를 둔 것 같다는 분석이 나온다.
2012년 1월 대규모유통업법이 시행되기 전까지 유통사 PB는 하도급법의 테두리 안에서 감시받았다. 공정위가 2008년 롯데마트에 4728만원의 과징금을 물린 게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롯데마트는 PB 상품을 납품하는 업체에 부당하게 재고를 반품하고, 판매장려금과 판촉 행사비 등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유통사와 PB 제조사 관계를 ‘갑을 관계’로 보는 게 맞는지 논란이 일면서 대규모유통업법이 제정됐다. 이 법에 따르면 유통·제조 양측이 정당하게 납품 조건을 약정했다면, 유통업체가 제조사로부터 판매 촉진을 위해 장려금을 받을 수 있다.
유통업체가 PB 상품 판매에 따른 재고 부담을 떠안는 데다 판매 확대를 위해 투자까지 해야 하는 만큼 제조사가 판매 성과에 대한 인센티브를 유통사에 제공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마트 등 대형마트는 CJ, 농심 같은 대형 제조사로부터 성과 장려금을 매년 받고 있다.
이런 논리들에 근거해 GS리테일은 즉각 항소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과징금 규모가 워낙 큰 데다 ‘런치플레이션(점심+인플레이션) 시대’에 치열해진 간편식 경쟁에서 자칫하면 밀릴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유통 대기업들이 운영하는 편의점을 중심으로 계열 제조사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져 중소 제조사가 설 땅을 잃을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이마트만 해도 PB 제조를 계열사인 신세계푸드에 주로 맡긴다.
세븐일레븐을 운영하는 롯데그룹의 코리아세븐은 롯데제과 등 계열사와 손잡고 PB를 만든다. 편의점업계 관계자는 “대기업 계열사 간 거래는 폐기 지원금 등을 받더라도 갑을 관계가 아니라는 이유로 하도급법 적용을 안 받을 것”이라며 “공정위의 이번 결정이 자칫 중소 식음료 제조사의 일감을 빼앗는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고 했다.
박동휘/김소현 기자 donghuip@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