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슈의 대표작은 1617년 출간된 다국어사전 ‘언어에 대한 안내서(Ductor in linguas)’ 다. 11개 국어로 된 이 사전의 인쇄 비용을 마련하지 못해 고민하던 민슈는 출판 예정인 사전의 내용을 설명한 인쇄물을 만들어 구독자를 미리 모집했다. 그 결과 국왕, 왕비, 귀족과 상인 등 다양한 계층의 417명이 구독자로 참여했고, 민슈는 ‘구독의 발명자’ 또는 구독형 출판의 ‘원조’가 됐다.
17세기 당시의 구독은 저자가 도움을 요청하면 후원자나 일반 시민들이 돈을 대는 방식이라 지금의 크라우드 펀딩과 비슷했다고 한다. 이때 돈을 지불하겠다고 문서 아래(sub)에 이름을 쓰는(script) 것을 subscription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책값을 미리 지불하는 것만이 아니라 기부의 의미도 내포했다. 책이 최종적으로 완성된다는 보장이 없어서였다. 이 단어가 ‘구독(購讀)’ 외에 다양한 뜻으로 쓰이는 연유다.
일정 금액을 내고 상품이나 서비스를 정기적으로 이용하는 이른바 ‘구독경제’ 또는 ‘구독형 서비스’가 급속히 늘고 있다. 문제는 구독경제의 범위가 음원, 온라인 동영상, 미술품 등을 넘어 식음료와 생필품, 자동차 등으로 확산하면서 ‘구입해 읽는다’는 뜻과 어울리지 않는 사례가 많다는 점이다. 어제 자 신문에 보도된 ‘전기차 배터리 구독 서비스’도 그런 경우다. 전기차 가격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배터리와 자동차의 소유주를 분리 등록해 차량 구매 부담을 대폭 줄이는 한편 배터리를 빌려 쓸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인데, 이를 ‘배터리 구독’이라고 하니 이상하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구독형 소비 형태가 정기배송형, 무제한 이용형(콘텐츠형), 렌털형 등으로 다양하고 소비의 대상도 무형의 서비스와 콘텐츠부터 유형의 상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므로 ‘구독’이라는 용어만으로 표현하기엔 무리가 따르는 게 사실이다. ‘임차 사용’ ‘정례 사용’ ‘약정 사용’ 등 사례별로 마땅한 대체어를 찾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서화동 논설위원 fireboy@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