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사진가’ 비비안 마이어(1926~2009)의 생애를 좇는 <비비안 마이어>(북하우스)는 이런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 책은 그에 대한 최초의 공인 전기다. 미출간 작품을 포함해 사진 400여 점을 실었다. 저자 앤 마크스는 미국 대기업 임원 출신으로, 프랑스 시골 마을과 뉴욕의 문서 보관소 등을 뒤지며 마이어와 관련한 기록을 샅샅이 훑었다. 14만 장에 이르는 아카이브에 접근할 권한을 받아 베일에 싸인 작가의 생애를 기록했다.
사람들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마이어의 작품은 2007년 시카고의 역사에 관한 책을 쓰려던 26세 청년 말루프가 경매장에서 그의 필름이 가득 든 상자를 400달러(약 50만원)에 사들이면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특별한 사진임을 직감한 말루프는 이후 경매 등을 통해 마이어의 사진과 필름을 계속 사들였다. 그리고 사진 20장을 골라 사진 공유 사이트 플리커에 올렸다. 입소문을 타고 이 사진들은 세계로 퍼졌고, 미국 주요 언론까지 관심을 나타냈다. ‘비비안 마이어 열풍’의 시작이었다.
마이어와 관련해 알려진 것은 시카고에서 보모로 일하다 2009년 4월 세상을 떠났다는 짤막한 부고가 전부였다. 말루프는 다큐멘터리 제작에 나섰다. 2014년 완성된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다. 이 영화는 이듬해 아카데미영화제 다큐멘터리 부문 후보에 올랐다. 이를 계기로 마이어의 작품 가격은 치솟았다.
20대 중반 이후 줄곧 보모로 일한 마이어는 카메라를 들고 거리에 나가 사진을 찍었다. 정식으로 사진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그의 작품은 당대 거장들과 비교됐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산뜻한 상식에 근거한 지성, 놀랍도록 선명한 유머감각, 우연히 연출된 일상을 순간적으로 포착하는 예리함이 특징”이라고 평가했다. AP통신은 ‘천재’라는 수식어를 달았다. 영국 가디언은 “마이어는 로버트 프랭크, 다이앤 아버스와 같은 이름에 견줄 만하다”고까지 했다.
마이어는 거리의 쇼윈도와 유리,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도 자주 찍었다. ‘셀피(selfie)의 원조’로 여겨지기도 한다. ‘카메라를 든 메리 포핀스’라는 별명도 붙었다. 보모라는 직업뿐 아니라 아이들의 아름다운 순간을 잘 포착하는 능력 덕분이었다.
그의 작품을 직접 볼 수 있는 사진전이 열린다. ‘비비안 마이어 사진전’이 4일 서울 성동구 그라운드시소 성수에서 개막한다. 오는 11월 13일까지 전시를 이어간다. 그가 직접 인화한 빈티지 작품과 미공개작을 포함한 사진 270여 점, 그가 사용한 카메라와 소품, 영상 자료 등을 만나볼 수 있다. 마이어가 1959년 필리핀 홍콩 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 등을 여행하며 촬영한 사진들이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된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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