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가 소폭 반등한 지난달 국내 개인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사들인 종목은 SK아이이테크놀로지(1989억원)였습니다. 개미(개인투자자)들의 선택을 받았지만 야속하게도 지난 한 달간 주가가 15% 넘게 추락했습니다.
시장에선 '국민 공모주'에서 '국민 역적'이 됐다는 혹평도 쏟아집니다. 공모주 청약 당시 81조원의 자금이 몰리며 돌풍의 중심에 섰던 핫한 종목이었지만 이미 공모가(10만5000원) 밑으로 주가가 떨어진 지 오래입니다. 유가증권시장에 입성했던 첫날 종가와 비교해선 주가가 반토막이 났습니다.
<sk아이이이테크놀로지></sk아이이이테크놀로지>
실적도 여전히 시장의 기대에 못미치고 있습니다. 지난달 29일 SK아이이테크놀로지는 올 2분기 연결기준 매출 1389억원, 영업손실 124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습니다. 3분기 연속 적자 상태입니다. 회사 측은 "주력 사업인 리튬이온배터리 분리막(LiBS) 판매량이 전 분기 대비 소폭 증가했지만, 유틸리티 비용을 포함 운영비용 증가로 영업이익이 감소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SK아이이테크놀로지에 실망한 한 증권사에선 최근 이 회사의 목표주가를 기존 18만4000원에서 10만원으로 대폭 하향 조정했습니다. 3분기에도 적자가 예상되는 데다 경쟁사들의 경쟁적인 판가 인하, 우크라이나 전쟁 등 악재가 즐비하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쉼 없이 추락하고 있는 주가를 지켜보던 SK아이이테크놀로지 주주들 사이에선 곡소리가 나고 있습니다. 종목토론방엔 'IPO 대사기극'이란 극단적인 표현이 수두룩합니다. 그럼에도 개미들은 국민 역적이 된 SK아이이테크놀로지를 집중 매수하며 다시 한 번 신뢰를 보냈습니다.
이들의 선택은 믿음에 대한 보답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요? 적자 늪에 빠진 SK아이이테크놀로지의 투자 매력도를 다시 한 번 살펴봤습니다.
SK아이이테크놀로지는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분리막 자회사입니다. 분리막은 2차전지 안정성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배터리 화재 위험성을 줄여주는 역할을 합니다.(분리막을 비롯해 양극재, 음극재, 전해액이 배터리 4대 핵심 소재로 꼽힙니다). SK아이이테크놀로지는 중국의 창신신소재(은첩고분), 일본 아사히카세이에 이어 분리막 분야에서 글로벌 3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SK온, LG에너지솔루션 등 국내 배터리 제조사를 비롯해 일본 파나소닉 등을 고객으로 두고 있죠.
분리막은 대규모 장치 산업에 속합니다. 기술 장벽이 높고 막대한 투자금이 필요로 한 만큼 소수의 사업자들이 시장을 나눠먹고 있습니다. SK아이이테크놀로지는 국내 청주, 증평공장을 비롯해 중국 창저우, 폴란드 실롱스크에 생산시설을 두고 있습니다. 중국과 폴란드에 단행한 추가 투자가 마무리될 경우 투자 완료시점인 2024년 27억㎡의 생산능력을 확보하게 됩니다.
분리막 실적은 보통 전기차 시장 성장세에 비례합니다. SK아이이테크놀로지가 노리고 있는 주요 시장 역시 해마다 30% 이상 성장하고 있는 전기차 시장입니다. 전기차의 주행거리, 안전성 등을 위해 고품질의 배터리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는 만큼 여기에 맞는 분리막 수요도 덩달아 성장하고 있습니다. 전기차 시대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고 한다면 세계적인 분리막 기술, 과감한 투자로 이미 규모의 경제를 달성한 SK아이이테크놀로지의 성장성에 기대를 갖기 마련이죠.
증권사들이 제시했던 목표주가가 이같은 기대감을 뒷받침합니다. 작년 말만해도 증권사들은 SK아이이테크놀로지의 목표주가를 24만원으로 제시했습니다. 지난해 3분기 실적이 컨센서스(증권사 추정치 평균)를 밑돌았지만 '잠시 삐끗했던 것 뿐'이라며 장기 성장가능성을 더 크게 봤습니다. 실제로 3분기 실적 부진은 전기차 배터리 분리막 실적이 양호한 상황에서 중국 스마트폰 수요가 줄면서 IT용 분리막 매출이 부진했기 때문으로 분석됐습니다.
작년 3분기에 이어 4분기도 저조한 성적표를 받아들었습니다. 반도체 대란으로 전기차 공급, 중국 스마트폰 출하가 원활하지 않은 상황에서 신규 공장 가동으로 고정비가 증가한 탓입니다. 올 1월 '인고의 시간'이란 보고서를 낸 KB증권은 목표주가를 24만원에서 18만원으로 크게 낮췄습니다. 하지만 하반기부터는 "중국 공장 phase 3과 폴란드 공장 phase 1이 본격 가동되면서 분리막 생산능력이 확충되는 가운데, 전방 수요 회복이 예상됨에 따라 실적 반등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며 보고서를 끝마쳤습니다. 장기적인 성장성이 훼손되진 않았다는 시각이 여전했죠.
분리막 사업은 고정비 비중이 70%에 달해 생산성이 향상돼야만 수익성이 살아나는 구조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각종 악재로 인해 지금처럼 생산성이 떨어질 경우 고정비 부담이 커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규모의 경제'가 생명인 장치산업의 특성상 실적이 연달아 부진할 경우 추가 투자를 단행하는데도 부담이 생길테니까요.
경쟁사의 대대적인 투자 계획도 악재입니다. 최대 분리막 생산 업체인 중국 창신신소재는 생산규모를 지난해 기준 40억㎡에서 오는 2025년 100억㎡까지 확대할 계획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SK아이이테크놀로지보다 2.5배 큰 규모입니다.
업계에선 중국 업체들과의 점유율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SK아이이테크놀로지의 매력도가 크게 개선되기 어렵다고 보고 있습니다. 실제 중국 창신신소재의 경우 공급 부족 현상의 수혜를 누리며 지난 2분기 시장 컨센서스를 웃도는 실적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코로나19 락다운 영향에서 벗어나면서 분리막 출고량이 전분기 대비 증가한 영향입니다.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분리막 생산 장비 부족으로 분리막 공급 부족 현상이 내년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분리막이 배터리에서 차지하는 원가 비중이 높은 상황에서 중국 업체와의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질 경우 단가 인하 압박에 시달릴 수 밖에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수요처의 단가 인하 압박은 실적에는 부정적인 요소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일각에선 전기차 수요가 살아날 경우 예상보다 빠르게 실적 턴어라운드에 성공할 것이란 기대 섞인 관측도 나옵니다. 반도체 공급 부족 현상으로 주춤했던 유럽 전기차 시장의 회복 신차 효과 등으로 인해 유럽 실적 개선을 기대해볼만 하다는 설명입니다. "주요 고 객사인 SK온의 2차전지 추정 생산량은 올해 36GWh에서 내년 58GWh로 크게 늘어나고, 유럽·미국 고객사의 전기차 생산이 하반기부터 회복돼 SK아이이테크놀로지의 분리막 수요는 빠르게 반등할 것"(한국투자증권)이란 분석이 제기됐던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다만 장기적으로 전기차 가격을 낮추려는 움직임이 커질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생산성을 높이지 않으면 살아남기 쉽지 않아 보입니다. 폴란드 공장의 생산성이 현재보다 개선돼야 단가 인하 압박에도 불구하고 높은 수익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분석입니다. 이용욱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중장기적으로 생산성 향상 및 투자비 감소로 중국 업체 대비 원가 경쟁력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SK아이이테크놀로지에 대해 이렇게 평가를 했습니다. "분리막은 가격 전가력이 낮고, 진입장벽이 양극재나 음극재에 비해 낮습니다. 계속 적자가 나는데는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SK아이이테크놀로지 프로필(8월1일 종가 기준)
현재 주가: 8만1500원
PER(12개월 포워드): 120.54배
연간 영업이익 컨센서스: 95억원(전년 대비 약 -90%)
목표주가: 17만원(5개월전)→11만원(현재)
박재원 기자 wonderful@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