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게임회사 직원이 최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인 블라인드에 올린 글이다. 게시물에는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3일까지 서울 세빛섬에서 열린 ‘원신 2022 여름 축제’ 행사장에 들어가기 위해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의 사진이 첨부됐다. 원신 제작사인 호요버스는 “축제 기간 동안 3만 명 이상이 참가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선 중국 게임이 한국에서 대규모 오프라인 행사를 열고 이용자들이 뜨거운 호응을 보낸 데 주목하고 있다. 그동안 평가절하했던 중국 게임이 이제는 한국에서도 사랑받을 만큼 성장했다는 사실을 방증하기 때문이다.
원신은 2020년 9월 중국 호요버스가 만든 오픈 월드 액션 역할수행게임(RPG)이다. 모바일 게임이지만 PC와 콘솔로도 즐길 수 있다.
원신은 남매를 찾기 위해 티바트라는 가상의 세계를 모험하는 여행자의 여정을 그리고 있다. 티바트는 7개 국가로 구성됐는데 현재까지 3개 국가가 순차적으로 공개됐다. 각 지역이 공개되면서 새로운 스토리와 캐릭터가 추가되는 식이다.
초반에는 일본 닌텐도의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을 베꼈다는 지적을 받았다. 게임 내 상호작용, 전투 기법 등의 유사성 때문이다. 호요버스도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중국은 물론 미국 일본 한국 등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시장조사업체 센서타워에 따르면 지난 5월 모바일을 통한 누적 매출이 30억달러(약 3조9000억원)를 넘어섰다. PC와 콘솔 매출을 포함하면 실제 금액은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센서타워는 원신에 대해 “가장 성공적인 모바일 게임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이 게임의 특징은 경쟁 요소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여타 게임처럼 PVP(플레이어 간 대결) 요소가 없어 경쟁을 유도하지 않는다. 게임에서 구할 수 있는 재화만으로도 여러 캐릭터를 얻어 ‘엔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 사람들이 원신에 돈을 쓰는 이유는 순전히 캐릭터를 갖고 싶어서다. 게임 내 스토리와 외부 영상 등을 통해 캐릭터 설정, 성격 등을 알려 이용자들이 새로운 캐릭터에 친숙해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한글 번역은 물론 유명 성우를 기용해 대사를 한국어로 더빙하는 등 현지화에도 공을 들였다.
원신의 성공은 한국 게임업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근 국내 시장에선 유저 간 경쟁을 통해 과금을 유도하는 게임이 상위권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확률형 아이템’으로 인한 사행성 논란도 끊이지 않았다. 성공한 게임의 수익 모델을 그대로 복사해 비슷한 장르의 게임을 내놓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원신을 비롯한 최근 중국 게임의 기술력이 한국 게임과 대등한 수준까지 올라왔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중국 내 규제 강화로 해외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장르를 다변화하고 새로운 종류의 수익 모델을 내놓고 있다는 설명이다. 한 게임회사 관계자는 “중국 게임은 그동안 기술력은 물론 스토리텔링, 연출 등에서 한국 게임보다 부족한 부분이 많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며 “한국 회사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활약하려면 중국 게임과의 경쟁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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