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떼고 '포'까지 떼는 일진그룹에 무슨 일이?[딜리뷰]

입력 2022-08-07 17:22  

이 기사는 08월 07일 17:22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머티리얼즈, 디스플레이 등 '알짜' 기업으로 꼽히는 계열사를 잇달아 인수합병(M&A) 시장에 매물로 내놓은 곳이 있습니다. 일진그룹 얘기인데요,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이 차남에게 물려준 일진머티리얼즈에 이어 일진디스플레이까지 매각키로 방향을 정해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왜 매각밖에 답이 없다고 판단한 것일까요? 이밖에도 포티투닷을 인수키로 한 현대차, 자소설닷컴까지 사들인 리멤버, 국내 첫 컨티뉴에이션 펀드를 조성해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한앤컴퍼니(한앤코) 등 지난 2주 간의 딜소식을 전해드립니다.


1. 주요 계열사 매각 나선 일진그룹

일진그룹이 터치스크린 패널 제조업체 일진디스플레이까지 매물로 내놨다고 합니다. 최근 매각주관사를 선정해 사모펀드(PEF)와 관련 기업들을 대상으로 매각 의사를 타진하기 시작했다는데요, 매각 대상은 허 회장과 특수관계인, 계열사 등이 보유하고있는 지분 43.19%입니다. 경영권 프리미엄을 포함해 1000억원가량이 거론되고 있다고 합니다.

시장에서 이 소식에 관심을 보인 건 두 가지 이유였습니다. 첫째는 일진디스플레이가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이 유일하게 주요 주주로 남아있던 계열사라는 것, 둘째는 '알짜' 기업인 일진머티리얼즈에 이어 일진디스플레이까지 연달아 매각키로 결정했다는 점이었습니다.

김병근 기자의 취재에 따르면 일진디스플레이를 시장에 내놓은 가장 큰 원인은 실적이 개선되지 않는 데다 영업손실을 더 이상 이어갈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유상증자 등으로 급한 자금을 해결하긴 했지만 임시방편이었을 뿐, 중국과의 치열한 가격 경쟁으로 인해 수익성이 악화되는 걸 해결하긴 어렵다고, 내부적으로 '정리'를 결정했다는 얘기입니다. 이 회사는 지난해 1014억원의 매출액과 354억원의 영업손실을 냈습니다. 2019년부터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한 가지는 경영권 승계를 마친 허 회장이 자신의 지분을 팔아서라도 아들들의 부담을 덜어주려고 나선 것이라는 해석입니다. 허 회장은 앞서 2013년에 장남인 허정석 일진홀딩스 부회장과 차남인 허재명 일진머티리얼즈 대표에게 경영권을 승계해준 바 있습니다. 그때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주요 계열사가 수 년째 적자를 내는 것을 그냥 두고 보긴 어려웠을 거란 분석입니다.


이미 허재명 대표가 보유한 일진머티리얼즈 대표의 지분 53.3% 매각을 추진중이기도 하죠. 일진머티리얼즈의 적격인수후보군(숏리스트)으로 롯데케미칼과 PEF 운용사인 베인캐피탈 등 네 곳이 선정된 상황입니다. 지속적으로 제조공장을 설립하는 등 투자를 이어가기 어렵다고 판단해 알짜배기 동박 제조사를 내놓는가하면, 뛰어난 인재도 영입하고 실적 개선을 위해 고군분투했는데도 적자에서 헤어나오기 어려운 패널 제조사를 팔기로 결정하는 등 일진그룹이 큰 변화를 맞닥뜨린 것만은 분명해보입니다.

이 두 회사를 팔고나면 일진그룹의 시가총액은 약 60%, 매출은 20% 이상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고 합니다. 외형 축소를 감내하더라도 "매각 밖에 답이 없다"고 판단했다는 건데요, M&A 시장에서는 일진그룹처럼 '알짜배기' 계열사를 팔아 현금을 확보하려는 기업들이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회계법인들이 M&A 재무자문팀 안에 구조조정 전담팀 인력을 늘린 것도 선제적으로 '준비 태세'를 갖추기 위한 것이고요. 마치 태풍 전야처럼 고요한 요즘입니다.

2. '자전 거래'인가 선진 투자 기법인가

최근 M&A 시장에서 가장 화제가 됐던 건 한앤코의 컨티뉴에이션 펀드(Continuation Fund)였습니다.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투자처를 운용사(GP)는 그대로 둔 채 투자자(LP)만 바꿔 새 펀드로 옮기는 것을 말하는데요, 국내에선 이같은 형태의 딜이 처음이었습니다. 차준호 기자의 취재에 따르면 "펀드 만기까지 회수에 실패한 자산을 새 펀드 투자자들에게 높은 가격에 떠넘기는 자전거래"라는 비판과 함께 "PEF 시장이 커지면서 경영권 매각, PEF 운용사간 거래에 이어 운용사는 그대로 두고 투자자만 교체하는 새로운 형태의 선진 투자방식이 등장한 것"이라는 해석이 동시에 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대상이 된 거래는 국내 1위 시멘트업체 쌍용C&E인데요, 한앤코가 15억달러(약 1조9000억원) 규모의 컨티뉴에이션 펀드를 조성해 이 회사의 투자자 교체 거래를 마무리한 겁니다. 쌍용C&E의 기업가치는 주당 8200원으로 거래 지분(77.68%) 기준 약 3조2093억원. 2016년 2호펀드를 통해 한앤코가 지분확보에 들였던 투자금은 약 1조4375억원이었고 배당 등을 고려할 때 한앤코의 투자 수익은 약 3배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헌' 펀드에서 '새' 펀드로 자산을 옮기는 방식의 회수는 우리나라에선 매우 생소한 게 사실입니다. 외부의 또 다른 투자자나 운용사를 찾아다니지 않아도 되고 그로 인한 시간 절약 효과 등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건 분명한 장점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운용 담당자들이 성과보수를 제대로 챙긴 것도 GP 입장에선 큰 장점으로 꼽을 수 있죠.

이미 해외에선 보편화된 투자기법이라는 것도 주목해야 하는데요, 리스크는 최소화하면서 가격에 대한 큰 이견없이 펀드끼리 거래를 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글로벌 PEF들 사이에서 '유행'했다고 하네요. 지난해 전 세계에서 컨티뉴에이션 펀드로 거래된 딜이 총 650억달러(파이낸셜타임즈)로, 2019년(270억달러)보다 두 배 이상 뛴 것만 봐도 해외에선 이미 보편화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LP들 입장에서도 관심을 가질 만한 구조입니다. 초기 투자기엔 자금도 투입해야 하고 기업 내부의 시스템 구축 등 기업가치를 키우는 과정에서 단기간 손실을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컨티뉴에이션 펀드를 통해 투자할 경우 이전 펀드가 투자하면서 기업가치를 끌어올리는 작업을 이미 해왔기 때문에 보다 안정적인 수익률을 낼 수 있는 겁니다.

반면 '거품' 논란도 피해갈 수 없는 대목입니다. 새 펀드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자산가치를 부풀려 시장가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팔아치우는 행위"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는 거죠. 실제로 미국 기관 투자자협회(ILPA)는 최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서한을 보내 컨티뉴에이션 펀드를 포함한 PEF간 세컨더리 거래가 구조적으로 운용사에게 유리하게 짜여 있다, 제대로 된 규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한앤코는 운용수수료를 1%로 낮추고 성과보수를 받을 수 있는 최소 수익률(목표수익률)을 연 10%로 상향하는 등 향후 쌍용C&E 운용에 대해 자신감을 내비쳤는데요, 결국 이 자산을 비싸게 새 펀드에 넘긴 것인지 '쌍방 윈윈'인지는 시간이 흘러 수익률을 들여다보면 알 수 있을 겁니다. 아무튼 새로운 형태의 투자방식이 등장했다는 것 자체가 우리나라 PEF 시장의 성장을 방증하는 건 분명해보입니다.

3. 자율주행 스타트업 포티투닷 품은 현대차

현대자동차그룹이 자율주행 기술 스타트업 포티투닷을 인수하기로 한 것도 눈에 띄는 소식이었습니다. 김채연 기자의 취재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이미 포티투닷의 지분 20.36%를 보유하고 있지만 이외에 송창현 포티투닷 대표의 지분 36.19% 등 기존 주주들의 지분 인수에 나섰다고 합니다. 현대차그룹이 투자하는 금액은 대략 4000억원 안팎. 포티투닷 인수를 마무리하면 현대차그룹의 계열사로 편입시킬 계획도 세웠다고 합니다.

이미 전기차사업을 주력으로 내세우고 있는 현대차그룹이 미래 성장 산업으로 자율주행 부문을 키우겠다는 의지를 이번 거래로 분명히 보여준 셈인데요, 앞서 현대차그룹은 2030년까지 미래 사업에 96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인수 후에도 송 대표는 그대로 남는 조건인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송 대표는 포티투닷 대표 겸 현대차그룹 TaSS(포괄적 교통 서비스)본부장 겸 사장으로 일해왔다고 합니다. 현대차그룹이 지난해 4월 모빌리티 총괄 본부를 신설하면서 겸직하게 된 건데요, 이번포티투닷 인수를 발판 삼아 향후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할 자율주행 부문에서 앞서가는 기술력을 선점하겠다는 포부를 읽을 수 있습니다. 현대차그룹이 구글의 웨이모, GM크루즈 등 글로벌 자율주행 업체들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을지 좀 더 지켜봐야겠습니다.

4. 광폭 행보 나선 명합 앱 '리멤버'

명함 앱으로 잘 알려진 리멤버가 신입 채용 전문 플랫폼인 자소설닷컴을 인수했습니다. 이안손앤컴퍼니, 슈퍼루키에 이어 올 들어 벌써 세 번째 M&A입니다. 이미 누적 가입자 80만명을 확보한 자소설닷컴을 인수한 것은 신입 채용 시장부터 우수 인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는 의미라는 게 회사측의 설명입니다.

앞으로 양사는 통합 회원 시스템을 도입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플랫폼별로 따로 운영하던 채용 상품도 결합하는 등 시너지를 창출할 계획입니다.


앞서 리멤버가 전문가 네트워크 기업 이안손앤컴퍼니, 신입 및 인턴 채용 전문 플랫폼인 슈퍼루키를 잇따라 사들인 것도 이번 자소설닷컴 인수와 같은 맥락입니다. 채용 및 인재 관련 시장에서 '슈퍼 앱'이라는 위상을 유지하며 압도적 1위로 자리매김하겠다는 복안인 것이죠.

최다은 기자의 취재에 따르면 이같은 '슈퍼 앱' 경쟁이 치열한 상황이라고 합니다. 스타트업 분야에서 어느 정도 선두주자가 가려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인데요, 1위 업체가 관련분야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확실한 1위 자리를 굳히려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앱 하나에 모든 걸 담겠다"는 말로도 표현할 수 있겠네요. 합종연횡이 활발히 이뤄지고 반전을 꾀하는 2등들의 도전도 이어지는, 최근 단연 가장 활발한 움직임이 돋보이는 시장인 것 같습니다. M&A와 관련한 제보는 언제든 환영입니다.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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