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생명의 설계도' DNA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입력 2022-08-05 17:17   수정 2022-08-06 00:38


“생명이란 무엇인가? 이에 대해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무도 무생물에서 생명이 탄생되는 바로 그 지점을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모든 생명현상은 그 현상을 발생시키는 앞선 생명현상 없이는 탄생될 수 없다. 그럼에도 생명 자체는 원인이 없다.”

과학책에 나오는 말이 아니다. 독일을 대표하는 작가 토마스 만의 1924년 소설 <마의 산>에 나오는 구절이다. 그로부터 100년 가까이 흘렀지만 아직도 생명의 기원을 모른다. 생명의 근원에 대해 더 궁금해하고, 놀라워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생명을 묻다>가 던지는 질문이다. 이 책을 쓴 정우현 덕성여대 약학과 교수는 분자생물학과 유전학을 연구하는 과학자다. 과학은 물론이고 역사와 소설까지 다양한 책 읽기를 즐기는 독서광이기도 하다. 정 교수는 과학자와 철학자, 소설가의 저작을 넘나들며 ‘생명은 무엇인가’를 둘러싼 여러 논의를 소개한다.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대중 과학서지만 깊이가 얕지 않다.

지난 100년간 생물학계는 눈부신 발전을 이뤘다. 1953년 프랜시스 크릭과 제임스 왓슨에 의해 DNA 이중나선 구조가 밝혀졌다. 2003년엔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로 인간 유전자를 구성하는 약 32억 쌍의 염기 서열 정보가 모두 해독됐다. 최근에는 ‘유전자 가위 기술’도 개발됐다. 인간을 비롯한 생물들의 유전체를 마음대로 자르고 붙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생명에 대한 경이감도 줄기 시작했다. 이제 사람들은 생명을 일종의 기계로 생각한다. DNA와 유전자가 생명체를 설명하는 모든 것이 돼버렸다. 저자는 의문을 표한다. “그러나 모든 것을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최초의 생명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우리는 아직 모른다. 인간이 가진 의식이 과연 어디에서 연유하는지 우리는 아직 모른다. 생명의 신비한 활력과 모든 정신적 현상을 물질계에서 쓰는 용어로 충분히 설명하거나 완벽히 묘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지 않을까?”

과학자들은 약 40억 년 전 지구에서 생명이 탄생했다고 추정한다. 무기물로 가득한 ‘원시 수프’가 번개나 태양복사, 우주 방사능에 노출돼 단백질 같은 유기물이 만들어졌을 거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1953년 스탠리 밀러는 전기 불꽃을 가해 플라스크 안에 간단한 아미노산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후 여러 과학자의 시도에도 아미노산을 결합해 단백질이 만들어지도록 하지는 못했다.

DNA가 만들어진 과정도 오리무중이다. DNA는 설계도다. 복잡한 단백질이 우연히 만들어졌다고 해도, 그 단백질을 위한 설계도인 DNA는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 현재 과학계는 이 모든 걸 ‘우연’이란 말로 퉁치고 있다.

인간은 유전적으로 프로그래밍이 된 기계일까? 이를 둘러싼 유명한 논쟁이 있다. ‘본성 대 양육’이다. 홀로코스트의 악몽을 겪은 인류는 20세기 중반 들어 양육에 무게를 뒀다. 하지만 유전자에 대한 연구가 쌓이면서 20세기 후반에는 다시 본성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1975년 에드워드 윌슨이 내놓은 <사회생물학>, 2002년 스티븐 핑커가 쓴 <빈 서판> 등이 이런 주장을 담았다.

하지만 유전자에 대한 추가 연구는 논쟁의 방향을 또다시 돌려놓았다.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를 끝내고 보니 인간 유전자는 3만 개에 불과했다. 인간의 본성과 인류의 무한한 다양성을 담기엔 턱없이 적었다. 최근 연구를 통해서는 인간 유전자가 최종적으로 2만 개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졌다. 생쥐(3만 개)보다 적었고, 몸길이가 1㎜에 불과한 예쁜꼬마선충(1만9000개)과 비슷했다. 환경에 따라 유전 형질의 발현이 달라진다는 후성유전학도 발전하고 있다. 유전자가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 아직 모르는 게 많다는 뜻이다.

또 하나 모르는 게 있다면 ‘죽음’이다. 박테리아와 같은 원핵생물은 이론적으로 수명이 없다. 좀 더 큰 생명체 중에선 작은보호탑해파리가 늙었다가 젊어지기를 반복하며 영생한다. 인간의 체세포에도 죽음을 막아주는 ‘불로초’가 있다. 텔로미어를 길게 해주는 ‘텔로머레이스’다. 하지만 활성화하진 않는다. 생명이 진화 과정에서 영생 대신 죽음을 선택한 것이다.

눌리우스 인 베르바(Nullius in verba). ‘누구의 말도 그대로 믿지 말라’는 뜻의 라틴어다. 1660년 설립된 최초의 과학 공동체인 런던왕립학회의 모토이자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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