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8월 7일(현지시간) 지구 반대편 콜롬비아에서는 역사상 가장 생경한 장면이 연출됩니다. '공산주의 반군' 출신 구스타보 페트로 대통령의 취임식이 열리는 날인데요, 이 취임식에서 콜롬비아 군부 지도자들이 페트로 대통령에게 충성 서약을 하게 됩니다.
상상만 해도 신기합니다. 과거 서로 총구를 겨눈 채 싸웠을 반군 출신 대통령과 정부군 수뇌부들이 이제는 웃으며 악수를 나누게 된다니….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들은 최근 "군부를 '개혁 대상'이라며 비판해 온 좌파 성향의 페트로 대통령과 콜롬비아 군부가 당분간 불편한 동거를 이어갈 전망이다"고 보도합니다. 일각에선 군부의 쿠데타 가능성까지 거론하네요. 이들의 속마음은 각각 어떤 상태일까요?
페트로 대통령은 올해 6월 대통령선거 결선에서 승리했습니다. 그의 당선 소식에 미국을 비롯한 서방권 국가들은 적잖이 충격을 받았을 겁니다. 콜롬비아는 중남미의 대표적인 친미 국가였죠. 우파 정권이 단 한 차례도 권력을 빼앗긴 적이 없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1995~2010년 중남미를 휩쓴 좌파 정당의 연이은 집권 '핑크 타이드(Pink Tide)' 흐름 속에서도 굳건히 버텼을 정도니까요.
그런 곳에서 승리를 거머쥔 페트로는 어떤 인물이냐 하면…, 콜롬비아의 반군 무장운동 역사의 산증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1980년대 좌파 게릴라 단체 M-19에서 활동했습니다. 그러다 1990년 M-19가 콜롬비아 정부와 평화협상을 체결한 첫 좌파 무장단체가 됐을 때, 페트로도 제도권에 발을 들입니다. 그는 활발한 사회활동을 토대로 2012~2015년 보고타시장을 지냅니다. 이후 상원의원을 거쳐 2022년 대통령까지 오르게 된 거죠.
사실 콜롬비아는 무장 반군 단체들과 오랜 내전의 역사를 갖고 있는 나라입니다. 정부가 토지개혁에 실패하자 1960년대 농민 봉기로 시작됐죠. 당시 농민들과 공산주의 세력이 합세해 만든 반군 게릴라 단체가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입니다. 콜롬비아 역사상 최대 규모를 자랑했던 조직이라 한번쯤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이후에도 페트로 대통령이 몸담았던 M-19, 민족해방군(ELN) 등 각지에서 다양한 반군 단체들이 결성됐고, 이들은 정부군에 대항해 게릴라전을 펼쳐왔습니다.
정부는 어떻게 대응했을까요? 당연히 군대를 키우는 선택을 합니다. 콜롬비아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방비 지출은 지난해 기준 3.4%에 달합니다. 이웃의 중남미 국가들 중 압도적인 지출 규모죠. 콜롬비아의 국가 정체성을 논할 때 군대를 빼놓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요즘도 콜롬비아에서는 장총으로 무장한 군인과 경찰관이 도심을 활보하는 광경을 흔히 볼 수 있다고 하네요.
반군 운동의 상징인 FARC이 2016년 정부와 평화협정을 맺고 이듬해에는 무장을 완전 해제했지만, 콜롬비아에서는 지금도 크고 작은 분쟁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적십자 자료에 따르면 6개의 내전이 진행 중이라고요. 2016 평화협정을 거부했던 FARC의 잔존 세력들, 민족해방군(ELN), 마약 범죄조직 등…. 콜롬비아 군부가 소탕해야 할(혹은 평화협정을 맺어야 할) 대상들이 아직도 많다는 얘기죠.
콜롬비아 군부로서는 '반군 출신' 대통령을 국군통수권자로 인정하고 충성을 맹세하는 게 정말이지…쉽지 않을 겁니다. 국제위기그룹의 엘리자베스 디킨슨 선임분석관은 "콜롬비아의 군대는 좌익 게릴라 운동을 근절하겠다는 정신에 입각해 성장해왔다"며 "이들이 게릴라군 출신 대통령을 최고 상관으로 모시려면 엄청난 정신 개조가 필요한 상황일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페트로 대통령은 의원 시절에도 콜롬비아 군인들과 각을 세웠습니다. 군부와 우파 정권, 우익 범죄조직 간의 '삼각 커넥션'을 폭로하고 군 장성들을 공격하기 일쑤였습니다. 대선 선거운동 기간에도 "몇몇 장군들이 폭력사태를 일으킨 범죄단체에서 뒷돈을 받아왔다"고 주장해 군부와 마찰을 빚었구요. 새 내각을 짜면서 검사 출신 이반 벨라스케스를 국방장관으로 임명해 또 한번 콜롬비아 군인들의 심기를 건드렸습니다. 벨라스케스가 군인 출신이 아닌 데다, 검사 재직 시절 군부 비리를 폭로했던 인물이었기 때문이죠.
이쯤되니 '콜롬비아 군인들이 페트로 정부를 전복시키기 위해 들고 일어나지는 않을까' 하는 일각의 우려가 살짝 이해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군부 쿠데타는 '기우'라는 의견이 우세한 것 같네요. 그동안 중남미의 이웃 국가들에선 군부 쿠데타로 나라 전체가 격동에 휩싸이는 숱한 역사가 있었음에도 콜롬비아는 '멀쩡'했었단 이유 때문이죠.
콜롬비아 로사리오 대학교의 한 국방전문가는 "군부와 페트로 정부 간 긴장 상태가 당분간 계속되겠지만, 그래도 콜롬비아 군부는 헌법질서를 매우 존중하는 조직"이라고 강조합니다. 페트로 대통령 입장에서도 이제는 군인들을 잘 다독이며 구슬릴 필요가 있을 겁니다. 여전히 내전이 잇따르는 와중에 콜롬비아에 '완전한 평화'를 정착시키려면 군대의 힘이 필요할 테니까요.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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