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가 대형마트 영업 제한 규제 완화 논의에 들어가자 전국 전통시장 상인들이 집단행동을 예고하는 등 크게 반발하고 있다. 대형마트의 의무휴업 폐지가 전통시장에 미칠 파장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이번 사안의 본질적인 문제는 발길이 끊긴 전통시장의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 교수는 "전통시장을 소비자들이 가고 싶은 공간으로 탈바꿈해야 한다"며 "대형마트 규제 완화와 함께 전통시장 대수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런 정책들에 대해 그는 "젊은 사람들은 안 가고 나이 든 사람만 전통 시장에 가게 된다"면서 "그렇게 가던 분들이 더 이상 안 가게 되면 전통시장은 문 닫는 일밖에 안 남는다. 그게 과연 상인들이 원하는 결과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당장 경기가 어려울 때는 상인들의 불만을 잠재우는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다 같이 쇠락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근 대형마트 규제 완화 논의에 대해 대부분 소비자는 반기는 분위기다. 지난 6월 대한상공회의소가 소비자 1000명을 대상으로 '대형마트 영업규제 10년, 소비자 인식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67.8%는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현행 유지' 의견은 29.3%로 대형마트 규제 완화를 찬성하는 여론이 2배를 웃도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전통시장을 꼭 살려야만 할까" 하는 시선도 존재한다. 시장 선택이라는 관점에서다. 하지만 이 같은 의견에 이 교수는 "시장 다양성은 국가나 소비자 모두에게 꼭 필요하다"며 전통 시장 살리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교수는 "대형마트나 쿠팡 같은 유통 대기업만 있는 시장이 과연 건강하고 좋은 시장인가"라고 물으며, "다양한 시장이 좋은 시장"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 소비자들이 매우 합리적이면서도 다양성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언급했다. 온라인 시장이 비대하게 성장했지만, 여전히 오프라인 시장에 대한 수요가 강렬하다는 것이다. 그는 "여의도 더현대나 하남 스타필드 같은 곳을 보면 알 수 있다. 한국인들은 온라인 소비를 그렇게 많이 하는데도 여전히 현실 세계로 나가 소비하길 원한다"고 말했다.
가장 중요한 건 이런 대형 복합쇼핑몰들이 전면에 쇼핑을 내세우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교수는 "최근 쇼핑몰들을 보면 소비자들이 와서 머물고 싶은 '공간'을 강조하고 있다. 전통 시장도 이런 전략을 모방해야 한다. 볼거리가 있는 곳에 맛집이 있고, 좋은 물건이 있으면 쇼핑으로 연결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5월 당시 오세훈 서울 시장 후보는 '소상공인 지원방안 및 지역경제활성화 대책'을 발표했다. 서울 주요 전통시장을 스페인 바로셀로나 '산타 카테리나', 네덜란드 로테르담 '마크트할', 스페인 세비아 '엔카르나시온' 등과 같이 전통시장과 현대건축이 어우러지도록 만드는 이른바 '지역 명소화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옛 노량진 수산시장, 남대문·동대문 시장, 마장축산물 시장 등 대형 시장과 각 지역에 있는 골목형 전통시장을 대상으로 시범 사업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큰 방향성에 대해서 공감한다면서도 사업 규모가 너무 크면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들고, 성공하지 못할 경우 이후 다른 지자체에서도 비슷한 사업을 추진하기를 꺼릴 수 있다며 우려를 제기했다. 특히 오 시장이 언급한 해외 사례 중 최대 10년까지 소요된 대규모 사업도 포함됐다는 점을 눈여겨봤다.
이 교수는 "이렇게 사업이 진행되면 공사 기간에 갈 곳 없는 상인들과 협상부터 잘 안 된다"면서 "작은 골목부터 시작해서 모방하고 싶은 멋진 시범 사례를 한두 개씩 쌓아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살아난 시장을 볼 때 비소로 다른 지자체장이나 전통시장 상인들까지 너도나도 하고 싶은 사업이 된다는 것이다.
…'한국의 멋' 정립해야 한다
즉, 콘셉트가 중요한 셈이다. 콘셉트는 사람들에게 인상을 남겨 다시 방문하고 싶은 기억으로 머릿속에 자리매김하기 때문이다. 그런 차원에서 일본의 사례도 눈여겨봐야 한다고 이 교수는 주장했다. 그는 "일본은 개방한 역사가 한국보다 100년 정도 앞선다"면서 "그런 과정에서 서구 문명과 자신들의 문명이 적절하게 조화되면서 문화적 독창성이 굉장히 잘 발전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어딜 가더라도 '참 일본답다'는 느낌이 있다. 하지만 한국은 그런 인상을 주는 곳이 손에 꼽힌다. 전통시장은 더더욱 없다. 우리도 그렇게 한국다운 멋을 정립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콘셉트는 특히 소셜미디어 시대에서 '입소문'을 타는 데 필수적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MZ세대는 오프라인에서 자신이 경험한 것을 인스타그램 등 소셜 미디어를 통해 소통하는 세대"라면서 "외국인들에게도 자연스럽게 노출된다. 기존 고령층 소비자에 더해 MZ세대, 외국인 등까지 모두 한국 전통시장에서 어울린다면 상상만 해도 흐뭇한 일"이라고 전했다.
이 교수는 "최근 경기가 더 안 좋아지고 있는데, 불리한 정책을 반길 상인들이 있겠는가"라며 "전통 시장 혁신 카드도 같이 논의된다면 전통시장 상인들, 이를 추진하는 정치인부터 소비자까지 모두 좋다. 궁극적으로 국가 경제에도 선순환을 만든다. 모두가 '위너'가 되는 투자"라고 전했다. 또한 전통 시장이 문화적인 공간으로 거듭나기 위해서 부처 간 협업이 필수라는 점에서도 범정부 프로젝트를 추진할 필요성이 크다고 언급했다.
저마다 차별화된 시장을 만들기 위해서도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이 교수는 말했다. 그는 "지방에 있는 관광명소들을 가보면 비슷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좋은 게 있으면 따라 하고, 그러다 보니 차별성이 모두 없어지는 것"이라면서 "국가가 경쟁을 촉진하든, 지역별로 색깔이 짙은 시장을 만들 수 있도록 누군가 큰 그림을 먼저 그려주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각각의 색깔을 낼 수 있게 국가가 교통정리를 해줄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끝으로 이 교수는 "축구선수 손흥민이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득점왕이 되거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넷플릭스가 해외 차트에서 1위를 하면 한국인들은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다. 이처럼 한국 사람들은 자기 동네, 출신에 대한 자긍심이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에게 시장도 그런 자랑스러운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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