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파친코>를 쓴 한국계 미국인 이민진 작가는 8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들과 만나 "젊은 독자들에게 역사적 의미를 채워주기 위해 '뿌리'에 대한 소설을 썼다"고 설명했다.
'뿌리'는 한국에서 태어나 7세에 미국 이민길에 오른 작가에게도 중요한 화두다. 그런 그였기에 우연히 접한 재일 한국인 소년에 대한 이야기를 수십년 동안 품고 있었고 결국 재일 한국인에 대한 소설을 쓰게 됐다.
"대학 시절 '땡땡이'를 치고 싶어서 일본에 사는 미국인 선교사 특강을 들으러 갔어요. 거기서 13살 재일 한국인 중학생이 학교에서 괴롭힘에 시달리다 아파트 옥상에 뛰어내려 자살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부모가 나중에 졸업앨범을 봤더니 '김치 냄새가 난다'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글이 적혀 있었대요. 그 이야기가 너무 슬프고 충격적이라 오랫동안 뇌리에 박혀있었어요."
최근에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파친코>뿐 아니라 미셸 자우너의 <H마트에서 울다> <h마트에서> 등 한국계 여성 작가들의 이야기에 미국 독자들이 주목하고 있다. 이 작가는 "한국 문화를 해외에 수출하기 위해 한국 정부가 그간 해온 노력, 한국 문화계에서 만든 훌륭한 작품들이 합쳐져 나온 성과"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한다"며 "더 많은 한국 이야기가 나와야 한다"고 했다.
"저는 가끔 '제 책의 목표는 당신을 한국인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해요. 그러면 다들 농담이라고 생각하고 웃지만 저는 진지해요. 톨스토이를 읽으면 러시아 사람이 되고, 디킨스를 읽을 때는 영국인이 되듯이, 제 책은 모두 한국인의 시선으로 읽어줬으면 좋겠습니다."
<파친코> 출간 초반에는 한국인 독자들의 반응을 듣지 못해 애를 태우기도 했다. 그는 "2017년 처음 책을 낸 뒤 피츠버그 카네기홀에서 2000명 규모로 독자와의 만남을 가졌는데 99%가 한국인도 동양인도 아닌 백인과 흑인이었다"며 "19세기 유럽·미국 문학을 즐겨 읽으며 작가로서 훈련했기 때문에 내 글이 미국·유럽 문학에 가깝기 때문인 것 같았지만 '내가 뭔가 잘못했나' '한국인은 왜 내 책을 안 읽지'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요즘은 한국계 젊은이들이 '이 책을 읽고 드디어 엄마를 이해하게 됐다' '내가 한국인인 게 자랑스럽다'는 편지를 보내주는데, 매우 보람차고 의미 있는 일"이라고 했다.
현재 집필 중인 다음 작품도 한국계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작가가 정한 제목은 '아메리칸 학원'. 한국 안팎 한국인들의 교육열과 그 이유, 교육이 사회적 지위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교육이 때로 사람을 어떻게 억압하는지에 주목한 소설이다. 그는 "한국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학원'이라는 단어를 알아야 한다"며 "그래서 '아카데미'로 번역하는 대신 한국어 단어를 그대로 쓰려고 한다"고 말했다.
<파친코>는 전 세계 33개국에 번역 출간됐다. 국내에는 2017년 출간된 후 출판사를 바꿔 최근 재출간됐다. 이 작가는 "<파친코>는 평생에 걸쳐 쓴 작품이고 단어 하나하나가 내게 너무 중요하다"며 "(여러 출판사 중) 인플루엔셜을 택한 이유는 번역에 대해서 내게 많은 권한을 줬기 떄문"이라고 설명했다. 기존 번역본과 달리 3부로 구성하고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 인용문을 그대로 싣는 등 작가의 의도를 최대한 살렸다는 설명이다. 새 번역본은 현재 1권만 판매 중이고 2권은 이달 중 선보일 예정이다.
이 작가는 오는 9일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열리는 사인회, 오는 10일 세종대에서 개최되는 북토크를 통해 한국 독자를 만난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h마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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