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사는 “한·일 관계가 어떻게 될지 상상하고 싶지 않지만, 아마도 우리 기업과 일본 기업들 사이에 수십조, 수백조원에 달하는 비즈니스 기회가 날아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일본이 자국 기업의 재산 보호를 명분으로 보복 조치에 나설 가능성이 높고, 그 경우 양국 관계는 ‘루비콘강’을 건너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일제강점기 징용 피해자 문제를 풀어낼 ‘외교의 공간’이 필요하다”며 “(법원이) 현금화 조치를 동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사가 지적한 ‘외교의 공간’ 필요성에 공감하며, 이를 위해 대법원에 두 가지를 주문하고자 한다. 첫째, 이번 건은 개인의 권리에 관한 사안이기도 하지만, 국익에 심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사건인 만큼 ‘법정 조언자(Amicus Curiae)’ 제도의 취지에 맞춰 정부 측 의견을 최대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외교부는 이 사건을 심리 중인 대법원 민사 2·3부에 외교적 해법이 강구되고 있으니, 사법적 판단을 유보해 달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지난달 하순 제출했다.
둘째는 외교·안보 소송에서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사법 자제 원칙에 입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조약 해석 시 행정부가 일관되게 지지해 온 입장에 큰 비중을 둬야 한다”고 판시했으며, 영국과 프랑스 법원 역시 조약 해석 시 ‘행정부 의견 조회’를 필수 절차로 두고 있다. 삼권 분립 원칙이 엄존함에도 법원이 외교 문제를 특별히 다루는 이유는 상대국에 사법적 효력이 제한적으로 미치는 경우가 많은 데다 국가 전체적 관점에서 일관성을 견지해야 할 필요성이 높기 때문이다.
현재 징용공 배상과 관련해선 ‘대위변제’ 안을 포함한 다각도의 해결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현 정부는 이전 정부와 달리 일본 측과 문제 해결을 위한 협의에도 적극적이다. 외교 문제는 외교 영역에서 풀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주기 위해 판결을 유보해야 한다. 판결 하나로 돌이킬 수 없는 국가적 피해를 초래한다면 이 또한 대법원이 감당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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