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겨울 에너지 대란 온다"…노르웨이도 "전력·가스 수출 제한"

입력 2022-08-09 17:18   수정 2022-09-08 00:01


“서방이 에너지 금수 제재를 계속하면 세계적인 대재앙이 시작될 것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달 TV 연설에서 한 말이다. 올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서방이 합심해 러시아산 원유, 천연가스 등 에너지 수입을 금지하기로 한 데 대한 반응이었다. 그는 “에너지 제재는 결국 서방 국가들에 부메랑으로 돌아가 본인들만 다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푸틴 대통령의 경고는 세계 각국에서 ‘에너지 보호주의’가 고개를 들면서 현실이 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자국 에너지 공급이 우선
노르웨이 정부는 8일(현지시간) “수력발전소의 저수지 수위가 계절 평균보다 낮아지면 유럽 시장에 공급하는 전력 수출량을 줄이겠다”고 밝혔다. 최근 여름철 냉방 수요가 폭증하면서 노르웨이 남부 등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전기료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자 내놓은 자구책이다

노르웨이는 프랑스가 탈원전에 나선 틈을 타 2020년 유럽 최대의 전력 생산 및 수출국으로 올라섰다. 노르웨이 생산 전력은 영국을 거쳐 독일, 네덜란드, 덴마크 등 유럽 전역에 공급되고 있다. 노르웨이의 초강수에 “유럽이 결국 석탄발전소를 재가동해야 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노르웨이는 유럽의 최대 가스 수출국이기도 하다. EU의 2021년 천연가스 수입 비중을 보면 러시아가 39%로 가장 높고 그다음이 노르웨이(25%)다. 노르웨이 정부는 지난달 유럽 국가들로 보내는 가스 수출량도 줄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호주 정부는 지난 7일 액화천연가스(LNG) 수출을 줄이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내년부터 내수 공급이 어려워질 것이란 판단에서다. 호주는 지난해 기준으로 세계 1위 LNG 수출국이다.

지난달엔 인도 정부가 휘발유와 경유에 대해 특별 수출세를 부과했다. 인도는 세계 24위 원유 수출국이다. 인도 정부는 “정유사들이 국제 유가 상승세에 편승해 이익을 창출하느라 내수 공급을 등한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헝가리 정부는 지난달 ‘연료 수출을 전면 금지’하는 에너지 비상 사태를 선포했다.
사활 건 에너지 확보 전쟁
에너지 보호주의는 글로벌 천연가스 등 에너지 가격 상승에 불을 붙이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5일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대체하기 위해 애를 먹고 있는 유럽 국가들과 아시아태평양 국가들 사이의 LNG 물량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LNG는 전통적으로 아시아 국가들이 수입해온 에너지원이다. 그러나 천연가스 수급을 둘러싸고 러시아와 기싸움을 벌이고 있는 유럽이 대체 에너지원으로 LNG 수입을 늘리고 있다는 설명이다.

러시아는 EU의 에너지 금수 조치에 반발해 노르트스트림 송유관을 통한 가스 송출량을 기존 용량의 20% 이하로 줄였다. 호주까지 LNG 수출량을 조이기 시작하면 에너지 대란은 더 심각해질 수 있다.

EU는 지난달 원자력과 천연가스를 친환경 에너지원으로 인정하는 ‘그린택소노미(녹색 분류체계)’를 최종 통과시켰다.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를 줄이려는 유럽 국가들이 석탄, 원유 등 화석연료 소비량을 늘리는 대신 LNG 수입 확대로 방향을 잡은 이유다. 미국 셰일혁명을 선도했던 체사피크에너지도 최근 “원유 자산을 버리고 천연가스 생산에 베팅하겠다”고 선언했다.

EU는 9일부터 러시아의 에너지 무기화에 대비해 내년 3월 31일까지 가스 사용량을 15% 줄이는 비상계획에 들어갔다. 그러나 남유럽 등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 비중이 원래부터 작았던 일부 국가가 반발하고 있다. 면제 및 예외 조항이 대거 추가돼 실효성이 미미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유럽 국가들은 여름 이상고온 현상으로 에너지 대란의 전초전을 겪은 바 있다. 겨울에 대비해 독일, 프랑스 등에선 야간 시간대의 가로등 출력을 줄이고, 시민들이 전기난로나 땔감 구매를 늘리고 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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