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9일 전국위원회를 열고 비상대책위 출범을 공식화하면서 비대위 성공 여부에도 관심이 쏠린다. 그동안 국민의힘은 한나라당 시절인 2010년부터 지금까지 여덟번 비대위를 꾸렸다.
대부분은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실패로 돌아갔다. 당내 주도권을 둘러싼 세력 다툼에 혁신은커녕 비대위 운영 동력이 크게 떨어지면서다. 전문가들은 이번 비대위가 또다시 당권 다툼 수단으로 비칠 경우 여권의 지지율 추락이 불가피할 것으로 지적했다.
권성동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지난 주말부터 선수별로 당내 의원들을 만나 비대위 성격과 임기 등에 관해 의견 수렴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비대위 성격과 활동 기간은 비대위원장 주도로 원내 의견을 수렴해 정해질 전망이다. 한 초선의원은 “비대위를 차기 전당대회를 위한 ‘관리형’으로 할지 당 체질을 바꾸는 ‘혁신형’으로 할지 막판까지 논의가 오간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중 대권 주자였던 박근혜 비대위 체제 빼고는 성공한 사례가 없다는 게 정치권 평가다. 특히 외부에서 영입된 비대위원장은 대부분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임기를 마쳤다.
2016년 6월 출범한 김희옥 비대위가 대표적이다. 당시 새누리당은 집권 여당인 상황에 20대 총선에서 참패하자 비대위를 꾸렸다. 하지만 헌법재판관 출신인 김 비대위원장은 출범 초부터 새누리당의 고질병이던 친박과 비박 간 계파 갈등에 휘둘렸다. 김 비대위원장에게 전권을 주기보다 혁신위라는 또다른 조직을 만든 점도 혼선을 겪게 한 원인이었다. 결국 당 혁신을 내건 비대위는 두 달 만에 문을 닫았다.
같은해 12월 새누리당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자 다시 비대위 체제로 전환했다. 갈릴리교회 원로목사였던 인명진 전 윤리위원장을 비대위원장으로 영입했다. 인명진 비대위는 초기에 서청원·최경환·윤상현 의원 등 친박계 핵심의원의 당원권을 정지했고 당명도 자유한국당으로 바꿨다.
하지만 정족수 미달로 상임전국위원회를 열지 못하는 등 비대위 구성부터 친박계 반발에 부딪혀 난관에 부딪히며 3개월 만에 끝났다. 당시 인명진 목사는 한 라디오에 나와 “(비대위는)위기모면용이지 제대로 혁신하고 받아들이려고 하는 것도 아니다"라고 당을 비판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2018년 지방선거에서 참패하자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을 영입해 비대위를 출범시켰다. 김 위원장은 '탈 계파·보스정치' 등을 내세우며 보수당의 가치를 재정립하는 데 노력했다. 이어 '국회의원 선거구 당협위원장 일괄사퇴’를 통해 인적 쇄신 작업에도 나섰다. 하지만 이때도 당협위원장 일괄 사태를 두고 내홍이 불거지며 인적 쇄신에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비대위, 당권 다툼 수단되나
이번 비대위를 두고도 당내 잡음이 적지 않을 것이란 게 정치권 시각이다. 벌써부터 비대위 성격, 활동 기간, 인적 구성을 두고 이견이 오가고 있다. 사실상 이번 비대위가 차기 전당대회를 앞둔 체제인 만큼 당권 주자 간 정치적 셈법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당내에선 다음달 시작할 정기국회를 마치고 내년 초 전당대회를 개최하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국정감사와 예산 심의 일정이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올해 안에 전당대회를 여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이런 이유로 권 원내대표는 ‘장기 비대위’를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원내대표 임기가 내년 4월까지인 만큼 당권 도전을 노리는 권 원내대표의 정치적 시간표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차기 당권주자인 김기현 의원 등은 '9~10월 전대’를 전제로 한 ‘2개월 단기 비대위’를 주장한다. 하루라도 빨리 전당대회를 열어 새 지도부를 꾸린 뒤 당내 혼란을 수습해야 한다는 논리다. 김 의원은 지난 3일 한 라디오에 나와 “비대위 장기화는 우리 스스로 계속 비상사태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자인하는 것과 비슷하다"며 "계속 비대위 체제를 이어가고, 그 기간이 길어지면 국민께 주는 메시지가 매우 혼란스러워진다"고 말한 바 있다.
지난달 초 이준석 대표의 윤리위 징계 이후 일부 친윤(친윤석열)계 의원들도 조기 전당대회의 필요성을 제기해 왔다. 이에 따라 비대위원에 친윤계 인사가 얼마나 합류하는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비대위 성격과 시기, 인적 구성 등은 ‘윤심(尹心·윤 대통령 의중)’에 따라 결정될 것이란 게 정치권 시각이다. 대통령 지지율이 20%대로 주저앉은 상황에 당정이 일관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명분에서다. 비대위 체제가 끝난 뒤 선출되는 새 당대표가 2024년 총선 공천권을 쥐게 되는 정치적 상황도 이런 해석에 힘을 싣고 있다. 한 중진의원은 “위기 수습책으로 꾸린 비대위가 또다시 당권 다툼에 휘말리면 지지율만 더 깎아 먹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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