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뒷받침하는 핵심 수단인 국가반도체펀드의 핵심 인사들이 줄줄이 사정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 미국의 중국에 대한 반도체 압박이 거세지는 가운데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한 펀드에 대한 지도부의 분노가 거세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0일 경제매체 차이신 등에 따르면 중국 공산당 사정기구인 중앙기율검사위원회(기율위)는 전날 화신투자의 두양 전 총감, 류양 전 투자2부 총경리, 양정판 현 투자3부 부총경리 등 전·현직 고위 관계자 3명을 당 기율 및 위법 혐의로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화신투자는 중국에서 '대기금'으로 불리는 국가반도체산업투자펀드의 운용을 전담하는 국유기업이다. 중국은 2014년 1차 1390억위안, 2019년 2차 2040억위안 규모의 대기금을 조성했다. 자금 조성과 중요한 전략적 판단은 대기금이, 일상적 자금 집행 업무는 화신투자가 맡는 구조다. 정책은행인 국가개발은행 계열사인 국개금융이 화신투자의 지분 45%를 갖고 있으며 국개금융의 루쥔 부총재가 화신투자의 초대 총재를 겸임했다.
기율위는 앞서 지난달에도 대기금의 딩원우 총재, 화신투자의 루 전 총재와 가오쑹타오 전 부총재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딩원우는 반도체 등 산업 정책을 총괄하는 공업정보화부의 전자정보부 국장 출신으로 2014년 대기금 출범 이후 현재까지 수장 자리를 지켜 왔다.
대기금과의 연관성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샤오야칭 현 공업정보화부 장관도 기율위 조사를 받고 있다. 샤오 장관은 중국의 핵심 국유기업인 90여개 중앙기업을 총괄하는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 주임, 반독점 당국인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 국장 등을 지냈으며 공산당 핵심 권력층인 200여명의 중앙위원이기도 하다.
또 한때 중국 반도체 굴기의 상징으로 불리다가 파산·구조조정을 거친 칭화유니그룹의 자오웨이거 회장도 당국의 조사 대상에 올랐다. 칭화유니는 대기금으로부터 수백억위안대의 투자를 유치했다.
중국은 '2025년 반도체 자급률 70%'를 내걸고 반도체 산업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했다. 대기금이 투자 대상을 결정하면 지방정부와 각종 금융사와 민간 기업들까지 자금을 보태면서 수조억원대 프로젝트가 조성됐다. 하지만 변변한 기술도 없이 정부 자금을 따내는 '먹튀'가 속출했다. 칭화유니그룹도 무리한 투자로 도산했다.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중국의 반도체 자급률(국내 소비량 대비 생산량)은 16.7%에 그쳤다.
중국은 1기의 실패를 거울삼아 대기금 2기부터 투자 대상을 좁혔다. 대표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인 중신궈지(SMIC)와 화훙, 장비업체인 베이팡화촹과 중웨이 등에 투자를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1기의 실패를 공개적으로 인정한 적은 없었다.
블룸버그통신은 소식통을 인용해 이번 대규모 사정이 부패와 비효율로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 대기금에 대해 중국 지도부가 분노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미중 기술패권 전쟁에서 밀리고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는 진단이다. 다른 측면에선 중국이 대기금 1기의 과오를 인정하는 것이 2기 이후 투자가 성과를 내는 데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란 해석도 나온다.
베이징=강현우 특파원 h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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