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도 이날 대심도 터널을 적극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2011년 집중호우 피해 이후 추진하다가 중단된 서울 주요 지역 대심도 배수터널 건설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대심도 터널이 반복되는 강남 물난리의 해법이 될 수 있을지, 있다면 그동안 왜 추진되지 못했는지 의문점을 짚어봤다.
그해 말 정책 추진에 변수가 생겼다. 무상급식 주민투표 논란으로 오 시장이 물러나면서 정책이 동력을 잃었다. 그해 11월 취임한 박원순 시장은 대심도 배수터널 건설 계획의 원점 재검토에 들어갔다. 당시 정치권 등에서 “오 전 시장이 벌인 과도한 토목공사를 멈춰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2013년 이 사업은 크게 후퇴했다. 서울시는 대심도 터널 설치를 애초 일곱 곳에서 한 곳(신월동)으로 줄였다. 대심도 배수터널 관련 예산도 1892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11년이 지난 현재 신월동 일대에만 대심도 배수 터널이 완공돼 있다. 지하 40m에 지름 10m, 길이 3.6㎞로 설치된 이 시설의 배수 터널은 32만t의 물을 저장하는 저류 기능을 갖추고 있다. 터널 건설 이후 신월동 일대에는 심각한 침수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 이번 폭우 사태에서도 이 터널 덕분에 양천구는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2011년 안에 비해 대폭 축소된 안이었다. 문제는 이 역시도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배수구역 경계조정’ 공사는 2016년까지 마무리할 예정이었으나 예산과 지장물 이설 문제로 2024년까지로 미뤄졌다. ‘유역분리터널’ 공사 역시 지연되고 있다. 결국 목표로 했던 30년 빈도(시간당 강수 95㎜) 호우 대응체계조차 갖추지 못했다.
서울시는 수방·치수 대책에서 아낀 예산을 어디에 썼을까. 2013년과 2014년 서울시 예산을 살펴보면 답은 쉽게 나온다. 2013년 전체 예산은 전년보다 5.3% 줄었지만 사회복지 예산은 6조285억원으로 전년 대비 16.7% 급증했다. 수방·치수 예산은 4369억원으로 전년 4317억원에서 52억원(1.2%) 늘어나는 데 그쳤다. 2014년에도 수방·치수 예산은 4368억원으로 1억원이 되레 줄었다. 반면 복지예산은 6조8425억원으로 13.5% 늘어났다.
강남역 일대는 3500억원을 투입해 당초 빗물저류배수시설 건설 계획을 복원하는 근본적인 치수 대책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시간당 처리 용량을 현재 ‘30년 빈도 95㎜’ 기준에서 최소 ‘50년 빈도 100㎜’로 높이고, 항아리 지형인 강남은 ‘100년 빈도 110㎜’를 감당할 수 있도록 목표를 상향할 계획이다.
환경단체들은 대심도 터널 공사에 대해 여전히 부정적인 의견을 나타내고 있다. 2011년 서울시 대책 발표 당시 서울환경연합은 “침수 피해의 원인은 하수관거 폐쇄와 과도한 불투수 포장이었다”며 “지하배수로를 건설하는 것은 과잉 대응”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침수의 원인이 대심도 터널이 없었기 때문이라며 이제라도 설치를 서둘러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환경 파괴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도심에서 대심도 터널을 건설하는 데 환경 파괴 이슈가 끼어들 수는 없다”며 “이미 기반시설이 다 깔려 있는 도시공간에서 환경 파괴에 대한 비용은 매우 적다”고 설명했다.
비용 문제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재 강수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고, 데이터가 바뀌었기에 비용·편익 분석을 다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대심도 터널이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것은 우리 사회 안전불감증의 한 단면”이라며 “재난대책의 경제적 비용·편익 분석을 하면서 편익에 대해 너무 작게 평가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영연/구민기/권용훈 기자 yy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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