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전성기의 끝? 창업 영웅들의 퇴진

입력 2022-08-11 13:36   수정 2022-08-27 00:01

미국 실리콘밸리에 기반을 둔 스타트업 창업주들이 연달아 임원직에서 물러났다. 경기침체 우려가 거세지자 투자자들이 확장형 경영자 대신 운영에 강점을 지닌 베테랑을 선호해서다.

10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올해 들어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창업주들이 잇따라 퇴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핀터레스트의 창업주인 벤 실버만은 지난 6월 최고경영자(CEO)에서 사임했다.

에어비앤비의 창업주 조 게비아는 지난달 사퇴를 선언했고, 배달스타트업 인스타카트의 아푸르바 메타도 올해 안에 회장직에서 물러날 거라고 발표했다. 셋을 비롯해 트위터, 펠로톤, 미디엄, 마이크로스트레지의 창업주가 모두 올해 사임했다.

실리콘밸리를 이끌던 창업주 열풍이 한풀 꺾였다. 통상 미국에선 스타트업의 기업가치가 10억달러를 넘겨 유니콘에 등극하면 경영진이 교체되기 다반사였다. 투자자들이 기업 성장을 이끌던 창업주 대신 운영에 특화된 경영진을 원했기 때문이다. 사업 확장보단 수익성에 초점을 맞춘 선택이다.

최근 10년간은 스타트업 창업주의 입김이 강했다. 기업 규모가 커져 투자금이 불어나도 CEO직을 유지할 수 있었다. 창업주의 경영권을 보장해주는 조건을 붙여 투자 계약을 체결해서다. 투자자들은 창업주가 내세운 비전을 신뢰하기 시작했다. 페이스북 창업주인 마크 저커버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창업주 등 성공 사례가 잇따르자 스타트업에 장기투자를 결정한 것이다.

올해는 상황이 달라졌다. 정보기술(IT)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주가가 급락했다. 에어비앤비는 올해 들어 31% 하락했고, 핀터레스트는 37% 떨어졌다. 펠로톤 주가는 66% 곤두박질쳤다. 스타트업 업계 상황이 악화하자 벤처투자자들의 인내심이 바닥을 쳤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경기침체 우려가 거세지며 미래를 염두에 둔 투자자들이 줄었다는 설명이다. 액셀러레이터(스타트업 육성기관)인 스타트업닷컴의 윌 슈로터 대표는 “최근 3개월 동안 많은 게 달라졌다”며 “‘훗날 (우리의) 가치를 알게 될 것’이라는 창업주들의 이야기가 더는 매력적으로 들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투자자들이 더는 성장을 도모하지 않는다는 분석도 나온다. 기업확장보다 내실을 다질 수 있는 베테랑을 CEO로 선임하길 원하고 있다. 댄 돌레프 미즈호증권 애널리스트는 “투자자들이 로빈후드 창업주이자 최대 주주인 블라드 테네프에게 경험 많은 경영자를 CEO 자리에 앉히라고 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라고 설명했다. 몇몇 스타트업 창업주는 기업공개(IPO)를 통해 지분을 희석해서 경영권을 방어하려 나섰지만 시장 악화로 여의치 않는 상황이라고 NYT는 보도했다.

자발적으로 퇴진한 창업주도 나타났다. 공간 공유 스타트업인 커먼의 창업주 브래드 하그리브스는 CEO에서 물러나 최고 크리에이티브 책임자를 맡기로 결정했다. 빈자리는 호텔업계 베테랑인 칼린 할로만이 맡게 된다. 하그리브스 창업주는 “너무 많은 창업주가 CEO 자리를 지키고 있다”며 “지금같이 불확실한 시대에는 비전보다 안정성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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