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자학적 반지하 주택 논란, 이성적이지도 현실적이지도 않다

입력 2022-08-11 17:19   수정 2022-08-12 07:49

서울시가 주거 목적의 지하·반지하 주택 신축을 전면 불허하고 기존 반지하 주택은 10~20년의 유예기간을 두고 순차적으로 없애거나 창고 등 비주거용으로 용도 전환을 유도하겠다고 그제 발표했다. 지난 8일 수도권에 쏟아진 기록적인 폭우로 서울 신림동과 상도동의 반지하 주택에서 주민 4명이 목숨을 잃는 등 반지하 주택 침수 피해가 막대한 데 따른 조치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하·반지하 주택은 안전, 주거환경 등 모든 면에서 주거 취약 계층을 위협하는 후진적 주거 유형”이라며 “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요 외신은 이번 반지하 침수 사고를 전하면서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 같다고 했다. 반지하 침수 피해가 한국 도시 빈곤층이 처한 어려움과 주택난, 사회적 불평등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지하·반지하 주택이 불편하고 취약한 주거환경인 것도 맞고, 주로 가난한 사람들이 산다는 것도 맞다. 하지만 영화 ‘기생충’을 소환하며 반지하 주택이 우리의 치부인 양 자학하고 매도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국내에서 반지하 주택이 본격적으로 보급된 것은 수도권 과밀화와 함께 주택난이 심각해진 1980년대부터다. 다세대 주택이 늘어나면서 지하공간은 용적률에 포함되지 않는 이점 때문에 반지하 주택 건설이 급증했다. 좁고 불편하나마 반지하 주택이 있었기에 가난한 도시민이 적은 돈으로 생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현실을 이해하면서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일이다. 현재 서울시의 398만2290가구 중 약 5%인 20만849가구가 지하 또는 반지하 주택에 살고 있고, 가난한 세입자들이 대부분이다. 문제는 반지하 신축을 불허하고, 기존 반지하까지 모두 없애면 이 많은 사람에게 공공임대주택을 지원할 수 있느냐다. 주거 취약계층을 위한 공공임대주택 공급은 지난해 6026가구, 올해 1만 가구에 불과하다. 수요에 비해 공급 물량은 늘 턱없이 부족한데 반지하 가구를 위한 물량까지 제공할 수 있나. 반지하에 비해 지상층은 임대보증금과 월세 등이 훨씬 비싸다. 결국 반지하를 떠난다면 고시원, 쪽방, 비닐하우스 등으로 하향 이동할 수밖에 없다.

마땅한 대안도 없이 반지하 주택을 급격히 줄이면 취약계층의 주거 안정성만 흔들 가능성이 크다. 반지하 주택이라고 다 위험한 것도 아니다. 따라서 정밀한 실태조사를 통해 상습 침수지역의 반지하 주택부터 침수 방지턱을 설치하는 등 현실적인 조치를 하면서 시장원리에 따른 해법을 차분히 찾아야 한다. 근본적인 대책은 전국 반지하 가구의 98.4%가 몰려 있는 수도권의 충분한 주택 공급이다. 반지하를 없애는 대신 건축법상 층수 제한을 완화해주는 방안도 고려해봄 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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