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달청은 연간 130만~150만t(약 9500억원 상당)의 철근을 입찰한다. 지방자치단체와 시·도교육청 산하 공공기관이 사용할 목적에서다. 통상 입찰은 기업들이 희망 계약수량과 단가를 적어내면 최저가격으로 입찰한 기업부터 차례로 낙찰자를 정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하지만 이번에 제재를 받은 철강사들은 각자 낙찰받을 물량과 가격을 사전 합의한 것으로 조사됐다. 업체별 생산능력과 과거 조달청 계약 물량 등을 기준으로 낙찰물량을 사전 배분했다는 것이다.
공정위에 따르면 조달청 입찰 공고가 나면 7대 제강사 입찰 담당자들이 먼저 만나 물량 배분을 협의하고 조달청에 가격자료를 제출하는 날 나머지 압연사 입찰 담당자들과 만나 업체별 낙찰물량을 정했다. 투찰 가격은 쪽지 등을 통해 전달하면서 공동으로 결정했고, 입찰 당일 대전역 인근 식당 등에 모여 배분 물량, 투찰 가격을 점검하고 투찰 예행연습을 하기도 했다는 게 공정위 설명이다.
그 결과 2012~2018년 이뤄진 28차례의 조달청 입찰(입찰금액 총 5조5000억원)에서 단 한 번도 탈락 업체가 생기지 않았고 투찰률(예정가격 대비 낙찰금액의 비율)은 대부분 99.95%를 넘었다.
공정위는 이에 따라 11개 철강사에 2565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담합을 주도한 7개사와 이들 회사의 전·현직 직원 9명을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다. 이는 공정위가 최근 철강업계를 제재한 세 번째 사례다. 공정위는 2018년 9월 6개 제강사의 철근 판매가 담합에 1194억원, 지난해 1월 7개 제강사의 고철 가격 담합에 3000억원의 과징금을 매겼다. 공정위는 “원자재·중간재 담합 행위에 대한 점검을 강화하고 무관용 원칙으로 엄중하게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철강사들은 공정위의 이날 결정에 대해 입찰 구조에서 비롯된 문제라고 반발했다. 조달청이 철근 공공입찰의 낙찰가격을 철근 시장가격의 ‘95%±0.2%’ 수준으로만 제시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낙찰가로 제시할 수 있는 범위가 매우 좁은 만큼 철강사들이 써낼 수 있는 입찰가격이 특정 금액에 수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철강업체 관계자는 “공공철근 입찰 방식을 바꾸지 않는 이상 담합으로 오해를 받는 상황이 이어질 수 있다”며 “공정위의 이번 판단에 대해서는 행정소송으로 대응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지훈/김익환 기자 liz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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