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이 녹아 액체인 물로 변하고 그로 인해 주변이 젖는 데 비해 드라이아이스는 젖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체에서 액체를 거치지 않고 바로 기체로 날아가는 승화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고체가 기체로 날아가거나 반대로 기체에서 고체로 변하는 승화는 일상생활에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다.
아이스크림이나 냉동식품같이 언 상태로 판매되는 제품을 구입하면 대개 드라이아이스가 들어 있다. 얼음팩이나 젤 냉각팩보다 온도를 낮추는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드라이아이스의 온도는 영하 78.5도로 일상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물질 중 가장 차갑다. 자체 온도가 낮은 데다 기체로 승화하면서 승화열을 흡수하는 냉각 효과도 더해지기 때문에 탁월한 냉각제가 된다. 이런 드라이아이스는 언제, 어떻게 발견돼 사용되기 시작한 걸까?
1835년 프랑스의 과학자 샤를 틸로리에는 금속 탱크에서 액체 이산화탄소가 배출될 때 눈 같은 흰 물질이 생기는 것을 관찰했다. 이를 얼음이라고 생각한 틸로리에는 흰 물질이 녹지 않고 사라지는 것을 보고 어리둥절했는데, 동료 과학자들 덕분에 자신이 최초로 드라이아이스를 만들었다는 걸 알게 됐다. 액체 상태로 배출된 이산화탄소가 기체로 변하면서 열을 흡수해 급격하게 온도가 떨어져 고체가 된 것이다. 이 실험은 지금도 해볼 수 있다. 1회용 플라스틱 스포이트를 자른 뒤 곱게 간 드라이아이스 가루를 넣고 입구를 막아두면 드라이아이스가 녹아 액체가 만들어지고, 점점 부풀다가 폭발하면 다시 드라이아이스가 생기는 것이다. 다만, 위험할 수 있으니 반드시 전문가의 지도하에 해야 한다.
액체로 존재하는 물과 달리 이산화탄소는 주로 기체나 고체로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순수한 액체 이산화탄소가 존재하려면 5기압 이상의 압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액체 이산화탄소를 보려면 틸로리에의 금속 탱크와 같이 압력을 높일 수 있는 장치를 사용해야 한다. 온도와 압력에 따른 물질의 상태를 보여주는 상평형 그림을 보면 1기압에서 주로 생활하는 우리가 액체 이산화탄소를 보기 어려운 이유를 알 수 있다. 이산화탄소가 31.1도와 73기압의 임계치를 초과하면 기체와 액체의 성질을 모두 갖는 초임계 유체 상태가 되는데, 물질을 잘 녹이고, 이동이 빠르며, 잘 침투하는 특성이 있어 천연향 추출, 카페인 제거 등에 폭넓게 사용된다.
드라이아이스는 냉각제뿐 아니라 산업 현장에서 세척 작업에도 사용되고 있다. 미세한 드라이아이스 가루를 고압으로 분사하면 표면에 달라붙어 있는 이물질과 물체 사이에 들어가 승화하면서 부피가 늘어나 이물질이 분리되는 원리다. 드라이아이스 자체가 단단하지 않아 물체 표면에 손상을 주지 않고, 바로 승화해 사라지기 때문에 2차 부산물도 남지 않아 접착제, 잉크, 페인트 등의 제거에 자주 사용된다. 하지만 우리가 생활 주변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용도는 무대 연출에서 신비스러운 흰 구름을 만들어내는 포그머신일 것이다. 물속에 드라이아이스를 넣으면 승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흰 안개가 만들어지는데 그것을 무대 효과에 사용하는 것이다. 흰 안개는 공기 중에 있던 수증기가 드라이아이스의 승화열 흡수로 인해 미세한 물방울로 응결한 것이니 이산화탄소가 하얗게 눈에 보인다는 오해는 하지 말자.
지구와 가깝고, 인류의 대체 거주지로 자주 언급되는 화성에도 드라이아이스가 존재한다. 인간이 살 수 있도록 행성을 개조하는 테라 포밍의 후보인 화성에 존재하는 드라이아이스는 온도가 높아지면 이산화탄소로 변해 온실 효과를 일으켜 화성의 온도를 올리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화성이 거주 선택지가 되는 날이 올까? 그렇게 되기 전에 먼저 우리에게 그럴 권리는 있는지, 드넓은 우주의 주인이 호모 사피엔스뿐인지를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드라이아이스 하나로 여러 생각을 하게 되는 여름이다.
전화영 한성과학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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