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출간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출판사에 문의했더니 “수지타산을 맞추려면 2000권 정도는 찍어야 한다. 안 팔리면 저자가 이만큼은 사줘야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책을 내려면 수백만원을 써야 한다는 얘기였다. 정씨는 “돈도 돈이지만 숲 전문가로서 책이 재고로 남으면 나무한테 못할 짓이란 생각이 들어 포기했다”고 말했다.
그때 정씨의 눈에 들어온 게 교보문고 ‘주문 출판(POD·Publish On Demand)’이었다. 독자가 책을 주문한 만큼만 찍어 배송하는 ‘맞춤형 소량 출판 서비스’인 걸 확인한 정씨는 이후 POD를 통해 작가로 데뷔했다.
POD의 최대 장점은 상업성을 따지는 출판사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초기 비용도 적고 재고 부담을 떠안을 필요도 없다. 예컨대 막 정년퇴직한 사람이 30년간 회사 생활의 희로애락을 담은 책을 낸다고 가정해보자. 인플루언서가 아니라면 책을 내주겠다는 출판사를 만나는 건 ‘하늘의 별 따기’다. 등단한 문인들조차 출판사를 찾지 못하는 요즘이다.
대다수 출판사들의 출간 기준은 딱 하나, ‘얼마나 팔릴 수 있을까’다. 많이 팔릴 자신은 없지만, 책은 내고 싶다면 ‘자비 출판’을 택해야 한다. 그러러면 통상 1500~2000부 정도인 최소 발행 부수만큼을 저자가 사들여야 한다. 수백만원이 들어간다. 인세 수입은 언감생심이다.
POD는 다르다. 표지 디자인과 본문 편집을 저자가 직접 하면 초기 비용은 ‘0’이다. 책을 PDF 파일로 등록하면 인터넷 서점에서 팔 수 있다. 단 한 권만 팔아도 책값의 20% 정도를 인세로 받는다. 나머지 80% 중 제작비를 뺀 돈이 교보문고 등 POD 업체 몫이 된다. 재고 부담도 없다. 인터넷으로 주문이 들어와야 비로소 출판에 들어가는 시스템이어서다. 교보문고 관계자는 “종이 질, 양장본 여부, 책값 등 모든 걸 저자가 정하는 방식”이라며 “POD 업체는 주문이 들어오는 만큼만 찍으면 되기 때문에 손해 볼 게 없다”고 말했다.
단점도 있다. 출판사를 통해 낸 책은 주문한 지 하루이틀 만에 받을 수 있지만, POD를 이용하면 배달까지 1주일 정도 걸린다. 출판사의 마케팅 역량도 이용할 수 없고, 웬만해선 서점 진열대에도 오르지 못한다.
그럼에도 POD 서비스는 더욱 확산할 것으로 출판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그만큼 저자가 되려는 사람이 많아서다. 특정 분야를 깊이 파고든 책을 찾는 수요가 늘어나는 것도 POD 시장 확대에는 호재다. 소수의 ‘오타쿠’를 겨냥한 책을 내기에 POD가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정부도 이런 점을 감안해 파주출판단지 등에 ‘공용 POD센터’를 구축하는 등 POD 서비스 활성화를 지원하기로 했다.
출판업계 관계자는 “POD 서비스가 소셜미디어와 묶이면 책 출간, 홍보, 마케팅 등 출판사의 기능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며 “머지않은 시기에 POD로 나온 책 중 베스트셀러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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