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여인 비비안(줄리아 로버츠). 그는 매력적인 사업가 에드워드(리처드 기어)와 함께 오페라를 보러 간다. 비비안은 난생처음 접한 오페라의 매력에 흠뻑 빠진다. 그러다 공연이 끝나갈 때쯤엔 눈시울을 붉힌다. 에드워드는 비비안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다 마음이 복잡해진 듯 애잔한 눈빛을 보낸다.
게리 마셜 감독의 영화 ‘귀여운 여인’(1990)은 30년을 훌쩍 넘긴 영화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이 좋아하고 기억하는 영화다. 빨간 드레스를 입고 설레는 표정으로 오페라를 보던 비비안의 모습은 이 영화의 대표 장면 중 하나다.
두 사람이 함께 본 오페라는 이탈리아 출신의 음악가 주세페 베르디(1813~1901)의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다. ‘춘희’라는 제목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 베르디(사진)의 대표작이자, 세계에서 가장 많이 공연된 오페라로 꼽힌다.
오페라의 내용을 알고 나면 두 사람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다. 오페라는 매춘부 비올레타가 귀족 청년 알프레도를 만나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두 사람은 열렬히 사랑하지만 알프레도 아버지의 반대로 헤어지게 된다. 비올레타는 폐결핵으로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영화 속 비비안은 비올레타와 비슷한 점이 많다. 비비안도 어두운 길거리를 전전하는 매춘부로 나온다. 에드워드를 만나 사랑하게 되는 점도 비슷하다. 오페라를 보던 비비안의 눈시울이 뜨거워진 것은 비올레타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감정 이입을 했기 때문이다.
베르디는 ‘오페라의 왕’이라 불릴 만큼 다양한 오페라를 만들었다. ‘리골레토’ ‘아이다’ 등 그의 작품들은 오늘날까지 자주 무대에 오르고 있다. 그중에서도 ‘라 트라비아타’는 베르디 자신의 사랑 이야기가 녹아 있는 작품이다.
베르디에겐 12년 동안 사귄 연인이 있었다. 소프라노였던 주세피나 스트레포니. 베르디는 결혼 4년 만에 전처와 사별(死別)했다. 자녀들도 모두 병으로 떠났다. 충격을 받고 슬픔에 빠져 있을 때 스트레포니를 만났다.
두 사람이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베르디가 만든 ‘나부코’에 스트레포니가 출연하면서였다. 스트레포니는 원래 유명하고 인기가 많았으나 미혼모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인기가 급속히 식었다. 하지만 베르디의 오페라로 재기에 성공했다. 베르디도 이 작품으로 고통을 극복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에게 의지했다.
베르디의 주변 사람들은 스트레포니의 과거를 들먹이며 교제를 반대했다. 하지만 베르디는 절대적인 믿음과 사랑을 보여줬다. 자신의 이야기를 녹인 ‘라 트라비아타’도 만들었다. 수많은 광고음악으로 활용됐던 아리아 ‘축배의 노래’가 나오는 오페라다.
베르디가 46세 되던 해, 두 사람은 드디어 결혼했다. 그들은 교제 기간을 포함해 반세기 동안 서로 아끼고 사랑했다. ‘라 트라비아타’의 비올레타가 비극적으로 죽어갔던 것과 다른 해피엔딩이다. 연인뿐 아니라 가족 친구 동료 등 다양한 관계를 이어가는 법을 베르디는 보여줬다.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길을 잃지 않도록 등불이 돼주고, 묵묵히 옆을 지키는 것. 해피엔딩을 만드는 공식이 있다면 이렇지 않을까.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