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이 놀이터였지….”
지난 12일 부산 영도구 봉래동에서 만난 김정환씨(63)는 50년 전의 고향을 회상했다. 다닥다닥 붙은 단독주택이 폭 1m 남짓의 골목길을 만들었다. 한때 아이들의 놀이터였을 이 골목은 산자락에 미로처럼 뻗어 노인의 발걸음에 무게를 더한다. 김씨는 “국내 1호 조선소(대한조선공사, 현 HJ중공업)가 있어 한때 부흥했지만, 지금은 자식 세대 대부분이 고향을 떠났다”며 “인구 감소는 국가가 해결할 문제”고 말했다. 그는 현재 마을협동조합 이사장으로, 청년(로컬크리에이터)과 함께 동네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인구 감소 위기가 대도시의 경쟁력까지 갉아먹고 있다. 부산시가 지난달 발표한 ‘부산 인구정책 브리핑’에 따르면 2020년 336만 명이었던 인구는 2050년 251만 명 수준으로 쪼그라들 전망이다. 같은 기간 중위연령은 46.3세에서 60.1세로, 생산연령(15~64세) 인구는 237만 명에서 121만 명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부산시는 지난해 전국 특광역시 중 최초로 초고령사회로 진입했다. 도시 비전을 알리는 슬로건 대신 ‘노인과 바다’라는 자조 섞인 도시에 관한 정의가 시민 의식 사이에 자리 잡은 이유이기도 하다.
부산시가 지난해 작성한 제1차 인구정책기본계획상 영도구의 지난 10년간(2011~2020년) 인구 감소율은 20.9%로 전체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 도시에서 인구 감소 문제가 생기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보여주는 ‘바로미터’인 셈이다.
영도구는 지역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빈집 정비 사업을 벌이고 있다. 최찬훈 영도구의회 의원(국민의힘)의 도움을 받아 빈집 관련 자료를 입수한 결과 부산시에서 집계한 영도구의 빈집은 392채에 불과하지만, 영도구가 자체적으로 집계한 자료에는 1124채로 급증한다. 전자는 명의가 있는 집만 대상으로 삼았지만, 후자는 무허가 건축물까지 포함했기 때문이다. 최 의원은 “빈집 문제 해결은 쉽지 않다. 명의가 있는 집과 무허가 건축물은 물론, 상속이 된 걸 모르는 자녀까지 다양하다. 특히 가장 큰 문제는 재개발을 노리고 일부러 빈집을 만드는 사례인데, 이런 경우에는 월세를 전전하는 저소득 노인층의 주거 내몰림 현상까지 빚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로컬크리에이터는 빈집 관련 사업의 문제점 중 하나로 규제를 꼽는다. 2018년 영도구가 도시재생뉴딜사업에 선정되며 지역에 안착한 스타트업 ‘라보드’가 대표적인 사례다. 라보드는 현재 빈집을 활용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 중이며, 나무로 만든 요트를 제조해 게스트하우스와 연계하고 있다. 일회성 관광객 대신 동네 재방문 가능성이 높은 단골 고객을 확보하는 전략이다. 라보드는 이외에도 블루베리 상품 디자인 공모, 스마트팜 공모 등 지역 주민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정부 지원 사업에 선정되며 마을협동조합과 호흡을 맞추고 있다. 라보드 이경진 대표는 “빈집 매입부터 공사, 숙박업 운영까지 규제에 걸려 사업을 추진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정부 자금 지원이 도움이 되는 부분도 있지만, 빈집 매입 문제부터 제동이 걸려 영도구에 사업의 많은 부분을 의존하는 중”이라고 토로했다.
교육 인프라 문제도 영도구 주민과 학부모 사이의 갈등을 촉발하는 원인 가운데 하나다. 최근 부산시교육청이 부산남고를 강서구로 이전을 추진 중이다. 영도구 주민으로 구성된 영도교육혁신운동본부는 지난 10일 부산남고 이전 추진 반대를 위한 영도 주민 공론장을 열어서 지역 교육 환경 여건 개선을 부산시교육청에 촉구했다. 권혁 사무총장은 “최근 수천세대 규모의 아파트 입주가 시작됐지만, 정작 영도구의 인구는 매달 200~300명씩 순유출되는 상황”이라며 “고등학교마저 이전되면 영도의 경쟁력은 회복될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부산=민건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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