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훈 칼럼] 삼성은 여전히 잡스가 만든 세상에 갇혀 있다

입력 2022-08-15 16:32   수정 2022-08-16 00:06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공식 복귀에 대한 그룹 안팎의 기대는 본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고 높다. 전방위 수사와 재판이 이뤄지는 지난 5년 동안 삼성 리더십은 일시적 공백 정도가 아니라 모든 것이 제멋대로 떠다니는 진공 상태에 가까웠다. 과도기라는 명목으로 인사와 조직 개편이 미뤄졌는가 하면 사장과 임원들에겐 나이와 직급을 섞는 기이한 계급정년제까지 시행됐다. 대놓고 본인 인사에 반발하는, 과거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일들도 벌어졌다. 조직의 응집력과 일체감이 약화되자 삼성 명함을 버리고 편하고 돈 많이 주는 판교밸리로 옮겨가는 직원들도 눈에 띄게 늘었다. 임직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대로 가면 큰일난다”며 앞날을 걱정하던 자리에 동석한 적이 있다. 그들이 구차하고 어지러운 상황들을 차례로 쏟아낸 뒤 유일한 희망으로 꼽은 것은 다름 아닌 이 부회장의 롤백이었다.

삼성의 리더십 불안이 그토록 심각한 것이었다면 왜 그동안 실적이 현저히 나빠지지 않았느냐고 반문하는 이들도 없지 않다. 지난해 삼성전자 매출(280조원)은 5년 전에 비해 38.6% 증가했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성장률이 70%에 이른다. 나쁘지 않은 성적이다. 하지만 사업 내용과 경쟁사들의 움직임을 살펴보면 평가 방향이 달라진다. 삼성전자 사업 포트폴리오는 20년 전과 거의 달라진 것이 없다. 반도체 휴대폰 TV 디스플레이의 4각 편대로 이건희 회장 시절 그대로다. 보다 혹독하게 평가하면 애플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가 만들어 놓은 세상에 갇혀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잡스는 삼성의 숙적이었지만, 인류 문명에 혁신적 모바일 생태계를 선물함으로써 모든 기업에 새로운 성장 기회를 가져다줬다. 반도체도 그 덕을 봤다. 수백만 개의 앱이 스마트폰 세상에서 명멸하면서 개인과 기업들의 디지털 전환에 가속이 붙었고 반도체 수요도 덩달아 폭발한 것이다. 하지만 정작 애플과 제로섬 게임을 하는 휴대폰 사업은 난공불락이라는 말을 실감하고 있다. 판매 물량은 세계 1위지만 이익은 애플의 20%에도 미치지 못한다. 세계 1위 TV 사업도 낮은 이익률을 힘겨운 마케팅으로 방어하는 양상을 이어가고 있다.

삼성전자 실적은 질적으로도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에 크게 밀린다. 지난 10년간 애플의 매출 증가율은 238%, 마이크로소프트는 140%, TSMC는 무려 293%에 달했다. 더 중요한 차이가 있다. 이들 기업이 지난 몇 년간 보여준 혁신적 성과와 미래 비전이다. 애플은 아이폰 성장세가 꺾이자 애플워치 에어팟 등으로 웨어러블 신시장을 열었다. 앱 중심의 사업전략에서 벗어나 음악 영화 뉴스를 아우르는 새로운 방식의 콘텐츠-플랫폼 사업을 안착시켰다. 차세대 성장동력도 착착 가시화하고 있다. 메타버스 시대를 주도할 AR(증강현실) 글라스와 자율주행시대에 대비하는 애플카 등이다. 모바일 전환에 속수무책이던 PC시대의 강자 마이크로소프트는 주력 사업을 클라우드로 전환하는 승부수를 단행했다. 빌 게이츠 시대를 상징하는 윈도를 밀어내고 스마트폰 사업은 중국에 팔아치웠다. 대신 링크트인, 깃허브 등을 공격적으로 인수해 ‘세계 최강의 소프트웨어 기업’이라는 본연의 위상을 되찾는 데 성공했다.

해외 기업인들의 동향을 살펴보면 한국적 현실과의 위화감은 더 커진다. 지난해 버진 갤럭틱의 리처드 브랜슨 회장과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우주선에 몸을 실었을 때 이 부회장은 수감 중이었다. 테슬라 창업자인 일론 머스크는 지구 밖의 무한공간을 인류의 새로운 변경으로 개척하겠다며 화성 이주라는 무모한 비전까지 내놓고 있다. 세상에 부러울 것 하나 없을 것 같은 억만장자들이 본인 목숨을 걸고 우주선에 올라타는 것이다. 실로 담대한 이상과 모험, 기업가 정신의 표출이다.

삼성은 더 이상 ‘잡스 월드’에 머물러선 안 된다. 이 부회장의 생각과 시선은 무한 가능성의 세계로 뻗어가야 한다. 지구가 아니라 우주, 유니버스가 아니라 메타버스,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꿈꾸며 살아야 하는 시대다. 삼성의 이상은 한 차원 높아져야 한다. 그래야 대한민국의 꿈이 커지고 국민의 눈길도 먼 곳을 향한다. 반도체 패권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힘겨울 수 있다. 미국이 아니라 한국이라는 약점과 한계도 있다. 그래도 삼성이 앞장서지 않으면 누가 하겠나. 이재용의 숙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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