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5일 광복절 축사를 통해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담대한 구상’을 발표했다. 북한이 대화에 나선다면 초기 협상 단계에서 식량을 공급하고 자원 수출 규제까지 풀어주는 경제협력에 나서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그동안 한·미 동맹에 기반한 북핵 억지력을 우선했던 윤석열 정부에선 ‘과감한 제안’으로 해석될 수 있는 대북 제안이다. 하지만 북한의 관심사인 ‘체제 보장’에 대한 방안은 빠져 있어 북한이 당장 협상에 나설지는 의문이다. 미국 정부도 “북한의 대응이 주목된다”며 반응을 기다리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은 이날 별도 브리핑을 통해 포괄적인 비핵화 합의가 도출되면 경제협력을 위한 남북공동경제발전위원회를 가동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국제사회에 보여준다면 실질적인 비핵화 이전 단계에서 유엔 경제 제재를 풀어줄 수 있다는 의사도 비쳤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북한의 풍부한 지하자원과 북한이 필요로 하는 식량, 생필품을 교환하는 한반도 자원식량교환 프로그램(R-FEP)을 준비 중”이라며 “과거 이라크가 유엔 제재를 받았던 시기 미국 주도로 이란의 석유와 생필품을 교환한 사례를 벤치마킹했다”고 했다.
이런 조치는 미국뿐 아니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논의돼야 할 사안이다. 윤 대통령 경축사에 공식적으로 포함되지 않은 이유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도 “북한의 광물 수출은 유엔 제재 사항”이라며 “필요할 경우 유엔 제재 결의안에 대한 부분적 면제를 국제사회와 같이 협의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미국과 사전 협의를 했냐’는 질문엔 “계획을 구체화하면서 (미국 정부와) 내용을 공유하고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북한의 대남 강경책을 고려한 조치로 해석했다. 남북 대화가 무르익는 타이밍에 필요한 해법을 낼 것이라는 분석이다. 최근 남북 관계는 북핵 위기와 미·중 갈등 등으로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정전협정 체결 69주년 기념행사 연설에서 윤 대통령의 실명을 직함 없이 거론하며 “윤석열 정권과 그의 군대는 전멸될 것”이라고 경고한 게 대표적이다.
이에 따라 담대한 구상에 대해 북한이 당장 호응할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은 이미 여러 매체를 통해 비핵화와 경제적 유인책에 대해 강력히 반발했다”며 “북한이 현시점에서 담대한 구상을 수용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실질적 비핵화 조치’를 더욱 명확히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정대진 원주 한라대 교수는 “북한 비핵화와 담대한 구상이 연결돼 돌아가게 할 바퀴축과 톱니바퀴가 필요한데 이것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다”며 “기존 대북 경제협력 논의에서 다뤄진 프로젝트를 열거하는 게 얼마나 실효가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좌동욱/김동현/김인엽 기자 leftk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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