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렌스키 "원전 방어 세계가 나서야…침묵하면 패배"

우크라이나가 유럽 최대 원자력 발전소 단지인 자포리자 방어를 위해 세계가 나서줄 것을 호소했다. 최근 원전 인근에서 포격전이 벌어지며 방사성 물질 유출 등 대규모 원전 사고에 관한 우려가 커진 데 따른 반응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15일(현지시간) 동영상 연설을 통해 “전 세계가 원전 방어를 위한 힘과 결단력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이는 패배를 뜻한다”며 “세계가 테러에 패배하는 것이고 (러시아의) 핵 협박에 굴복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서방국가가 핵과 관련한 대(對)러시아 제재를 새로이 부과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러시아군으로 인해 핵 참사가 발생한다면 그 충격파는 현재 침묵하는 사람들을 타격할 것”이라며 “(러시아군이) 원전 단지를 공격하거나 공격 기지로 활용할 경우 우크라이나군의 ‘특수 목표물’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우크라이나 자포리자 원전 단지를 점령한 러시아군을 겨냥한 발언이다.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인 3월 초 우크라이나 남동부 지역 에네르호다르시에 있는 자포리자 원전 단지를 점령했다. 자포리자에는 총 6기의 원전을 갖춰져 있어 단일 시설로는 유럽 최대 규모다. 이 중 2기가 우크라이나 기술자에 의해 가동되고 있다.

러시아군은 자포라지 원전 단지를 군 기지로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원전 단지 내에 군 병력과 대형 무기를 대거 배치했다. 러시아 국영 원자력발전업체 로사톰의 기술자들을 차출해 자포리자 원전 운영에 관여하고 있다.

지난 5일부터는 원전 단지를 둘러싸고 양국의 포격전이 이어졌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모두 상대방을 배후로 지목했다. 15일 러시아 매체인 인테르팍스는 우크라이나군이 원전 일대를 공격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군이 임명한 에네르호다르 시장인 블라디미르 로고프는 “(우크라이나군이)미국제 곡사포 M777 포탄 25발로 원전 인근 지역과 민간인 거주지를 2시간 동안 공격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군이 배후라고 맞섰다. 안드리 예르마크 우크라이나 대통령 비서실장은 “러시아군은 자포리자 원전에 포격을 쏟아부으면 세계가 러시아가 내건 조건을 받아줄 거라고 생각한다”며 러시아군이 자작극설을 제기했다.

원전을 둘러싼 대립에 국제사회가 잇따라 우려를 표명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핵 재앙을 우려하며 시찰을 요구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자포리자 원전 인근을 비무장지대로 지정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안전 보장을 요구하며 완전 비무장안을 거부한 상황이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