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 비트코인이라는 네트워크에 올려진 최초의 메시지는 꽤나 함축적이다. 비트코인의 역사는 2009년 1월 3일 익명의 개발자 사토시 나카모토가 생성한 첫 번째 블록에서 시작됐다. 그는 이 블록에 ‘The Times 03/Jan/2009 Chancellor on brink of second bailout for banks’라는 문구를 새겼다. 은행 추가 구제금융이 임박했음을 보도한 영국 신문 더타임스의 1면(사진) 머리기사 제목인데, 금융위기를 촉발한 이른바 ‘중앙집권적 금융 체제’에 대한 그의 문제의식을 나타낸 것으로 해석됐다. 암호화폐 지지자들은 지금도 그날 더타임스 1면을 상징적인 기록물로 여긴다.
출사표부터 의미심장했던 비트코인은 이후 13년 동안 여러 수식어를 더해가며 더욱 풍성한 서사를 만들어 나갔다. 희소성과 불변성을 근거로 ‘디지털 금(金)’이 됐고, 전통자산 수익률과 상관관계가 낮다는 이유로 ‘헤지(위험 회피) 자산’이자 ‘인플레이션 피난처’로 불렸다.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 답지한 비트코인 후원금은 감동적이었고, 엘살바도르가 구상한 ‘비트코인 도시’는 낭만적이기까지 했다. 지열(地熱) 발전으로 비트코인을 채굴해 자급자족을 이루며 세금도 걷지 않는 자유지대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마이크로스트래티지의 마이클 세일러 같은 유명 기업인의 비트코인 예찬은 이 신종 자산에 ‘권위’를 더해줬다. 채굴이 환경을 해친다는 비판에는 “화석연료 대신 재생에너지로 만든 전기를 쓰니 친환경적”이란 논리로 맞받았다.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채택한 엘살바도르에선 대통령은 유명해졌지만 국민의 삶이 나아졌다는 징후는 없다. 기초체력이 부족한 경제가 비트코인 하나로 쉽게 바뀌지 않았다.
물론 가격 폭락에도 불구하고 암호화폐 업계 내부에서는 기술과 산업 기반을 탄탄하게 다지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크립토 윈터(암호화폐 산업의 혹한기)’가 다시 와도 4년 전보다 잘 견뎌낼 것 같다. 최근 국내 암호화폐거래소들은 리서치센터를 잇따라 세우고 분석 보고서도 내고 있다. 투자자를 방치해온 과거와 달리 나름의 시각과 정보를 전달하려는 노력을 시작한 점은 칭찬할 만하다. 다만 초반에 “하반기부터 비트코인이 반등할 것” 같은 장밋빛 보고서가 나오는 점은 아쉽다. 주가도 모르는데 코인값을 알 수 있나. 비트코인을 떠받치는 또 하나의 강력한 이론인 ‘4년 주기설’대로라면 내후년께 초강세장이 돌아온다. 이 내러티브의 진위도 머지않아 확인될 것이다.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