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찾아간 서울 창신동 완구거리는 한산했다. 완구·문구 점포 120여 개가 모여 ‘아이들의 천국’으로 불리는 거리에 ‘꼬마 손님’은 드물었다. 완구거리 상인들은 저출산 여파를 가장 먼저 체감하고 있었다. 레트로 감성(복고풍)을 즐기려는 ‘키덜트족’과 외국인 관광객의 발길은 늘었지만 핵심 고객이 줄어들면서 상권이 쇠락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40년째 완구점을 운영하는 A 사장은 “호황기인 1980년대 말에 비해 이익이 20% 이상 줄어든 것 같다”고 했다.
완구산업의 위기는 통계로도 나타난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인형·장난감 관련 제조업체의 생산액은 2003년 3705억원에서 2019년 2806억원으로 감소했다. 이후엔 통계조차 작성되지 않고 있다. 사업체 수도 이 기간 219개에서 69개로 줄었다. 10곳 중 7곳이 사라진 것이다. 저출산으로 내수시장이 쪼그라든 데다 국내 생산비용마저 급증하면서 대부분 완구업체가 폐업하거나 해외로 이전한 결과다.
피아노 산업도 그런 사례다. 피아노는 1990년대만 하더라도 자녀 교육의 필수 코스로 꼽혔다. 하지만 어린아이 수가 줄어들면서 피아노 수요도 감소했다. 삼익악기, HDC영창(옛 영창악기) 등 주요 악기 업체가 직격탄을 맞았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악기산업 규모는 2000년 3990억원에서 2010년 2880억원으로 10년간 28% 줄었다. 이후 제대로 된 통계조차 작성되지 않고 있는데 업계에선 시장 규모가 제자리걸음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삼익악기와 HDC영창은 생산기지를 중국과 동남아시아로 이전했다.
유아동복 업계는 지난 20여 년간 소수의 수입 또는 국산 대형 브랜드 위주로 시장이 재편됐다. 아이는 줄었지만 씀씀이가 커진 부모 덕분에 시장은 오히려 성장하는 추세다. 지난해 국내 아동복 시장 규모는 1조648억원으로 전년 대비 17% 확대됐다. 버버리 등 글로벌 명품 브랜드들까지 앞다퉈 유아동복 시장에 진출했다. 하지만 중소 규모의 토종 유아동복 업체는 설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토종 아동복 브랜드의 대명사인 ‘해피랜드 코퍼레이션(옛 해피랜드)’은 2020년 코로나19 유행을 계기로 전국 대형마트에 입점함 160여 개 유아복 매장을 정리하고 한때 10여 개에 달했던 유아복 브랜드를 2개로 줄였다. 지금은 골프 의류 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분유 소비도 대폭 감소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분유시장(소매 기준) 규모는 3180억원으로 2017년(4291억원)보다 26% 급감했다. 올해는 3126억원으로 더 쪼그라들 전망이다. 분유시장 점유율 1위 남양유업은 케어푸드 시장에 진출하고, 매일유업과 일동후디스 등은 단백질 식품을 앞세워 저출산에 대응하고 있다.
학습지 기업 웅진씽크빅은 오픈 교육 플랫폼 ‘유데미’와 손잡고 국내 서비스를 시작했다. 누구나 강사와 학생이 돼 어학, 운동, 사진, 정보기술(IT) 등 다양한 수업을 올리거나 수강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대학 인터넷 원서접수 서비스를 제공하는 진학사는 취업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지난 4월부터 취업·이직 준비생을 대상으로 기업 현직자의 직무·취업 강의를 제공하고 있다.
민경진/한경제/최예린 기자 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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