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8월 17일 10:25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더욱 심화된 최근의 인플레이션 상황은 '비용 부담 없는 탄소중립 이행'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한다. 현재의 인플레이션은 코로나19 충격을 완화시키고 내수 경기를 유지하기 위해 거의 모든 국가에서 쏟아부은 유동성 확대가 원인이기도 하지만, 좀 더 본질적으로는 세계 각국의 넷제로(Net-zero·탄소중립) 이행을 위한 에너지 산업구조 전환에서 발생하는 불가피한 적응 과정의 결과다. 그동안 폭발적으로 늘어난 신재생에너지 투자만큼 줄어든 화석연료 투자가 화석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고, 최근에는 신재생에너지와 화석에너지의 가격이 동시에 올라가고 있다. 급등하는 에너지 가격은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 더 나아가 국가 안보에 치명적인 만큼 각국의 에너지 정책 초점 역시 탄소중립에서 에너지 안보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올 겨울 더욱 심화될 전망인 LNG 수급 이슈 등 에너지 대란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가 더욱 중요해진 시점이다. 미래학자 제레미 리프킨이 '인류의 미래를 보장하는 약속 어음'이라 명명했던 '수소'가 여전히 우리에게 유효한 대안인가 생각해볼 때가 됐다. 과연 우리는 '호모 카보니쿠스(Homo Carbonicus)'의 시대에서 '호모 하이드로제니쿠스(Homo Hydrogenicus)'의 시대로의 거대한 전환 과정에 한 발 더 가까워지고 있는가?
그린플레이션 시대에서의 가장 중요한 화두는 역설적이게도 탄소중립이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인 IPCC(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의 2021년 6차 평가보고서는 지구 온도 평균 1.5℃ 상승 도달 시점을 불과 3년 전에 승인된 '1.5℃ 특별보고서'에서 언급된 2030~2052년보다 무려 10년이나 앞당겨진 2021~2040년으로 예측했다. 이를 통해 지구온난화가 전례 없이 가속화되고 있다고 경고한 것이다. 이는 현인류가 그린인플레이션 시대를 살고 있다고 해도 기존 에너지 패러다임의 완전한 전환을 더욱 서둘러야 하는 과제에서 결코 면제되지는 못한다는 것을 방증한다.
탄소중립 목표 달성이 국제사회가 공통적으로 지향하는 불변의 대원칙인 만큼, 미래 에너지 환경 속에서도 에너지 안보 제고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 이행 노력은 병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EU는 2030년 신재생 에너지 목표를 2021년 발표한 Fit for 55의 40%에서 45%로 오히려 상향시키면서 러시아로부터의 에너지 독립을 추구하고 있다. EU의회 역시 지난 6월 해외에서 수입하는 제품 생산에 사용된 전기의 발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량을 규제하는 내용의 강화된 탄소국경조정제도를 탄소시장 개혁법안에 포함시켰다. 또한 최근 바이든 정부가 추진하는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 법안에 따르면, 향후 10년간 에너지 안정성 강화 및 친환경 제조설비 구축 등을 포함한 기후위기 대응에 481조원가량의 막대한 투자를 진행할 전망이다.
그린플레이션, 그린 보틀넥 등에 따라 수소 경제의 복잡성이 다소 높아진 것이 사실이나, 그럼에도 수소산업에 대한 투자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최고의 글로벌 기술 기업들은 대규모 프로젝트에 공동 투자해 수소 프로젝트에서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초기 고정비용을 낮추는 동시에 대규모 수요를 창출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향후 3~5년 내에 글로벌 수소산업은 주요 경쟁구조가 공고화되고, 경쟁을 위한 위치 설정 역시 완료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금 움직이지 않으면 경쟁을 회복하기 어려워지고, 그 과정에서 드는 비용도 더 증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긴장감 또한 글로벌 수소기업들이 투자의 끈을 놓을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다. 수소산업은 보조금, 가격보조, 인센티브 등 정부 정책의 지속성과 수혜 범위, 시점 등에 영향을 받는 초기 산업의 성격을 갖고 있지만,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마지막 단추를 채우기 위한 필수적인 대안이 '수소'라는 점에서, 수소 경제 실현과 신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한 주요 국가들의 정책적 지원은 더욱 구체화될 것이다. 특히, 한국은 탄소규제에 민감한 산업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탄소중립목표를 달성할 만한 여건이 미흡하고, 그만큼 한국에서 수소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될 것이다.
수소경제 전환을 포함한 에너지 전환의 흐름이 거대하고 장기적인 비즈니스 기회인 만큼, 탄소저감에 실패하거나 뒤처질 경우, 국가 및 기업 경쟁력은 크게 후퇴할 것이다. 2022년 딜로이트 액세스 이코노믹스의 연구에 따르면, 한국이 탈탄소 대응에 소극적일 경우 2050년까지 누적 950조원, 연간 부가가치상의 손실 기준 36조원에 이르는 매우 큰 경제적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반대로, 한국이 적극적으로 탈탄소 추진을 할 경우 2050년까지 누적 2300조원의 경제적 이익을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렇듯 수소경제로의 전환은 단순히 탄소중립 달성이라는 명분을 넘어 국가 도약의 실질적인 기회다. 따라서 수소경제 전환을 추진하는 것은 30년 뒤 한국의 산업, 경제, 국민의 삶의 질 수준을 글로벌 선진국의 위상에 올려놓기 위한 장기적인 국가비전 아젠다로 고려돼야 한다. 수소경제 전환은 에너지 시스템의 혁신뿐만 아니라 산업구조, 운송시스템 등 경제 전반, 그리고 외교통상, 경제 및 재정, 산업정책, 과학기술정책 전반의 변화를 요하는 과제이기 때문이다.
또한 수소경제 전환의 추진이 장기적으로는 국가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기 위한 방안이라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탈탄소 해법인 수소도 결국 상당 비중을 해외에서 도입하는 것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수소경제 전환과정에서 에너지 안보 강화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외 수소에너지 자원 접근성을 확대하고, 글로벌 수소 공급망을 구축하기 위해 적극 노력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수소경제전환이 성숙기에 진입한 우리 경제를 재도약시키는 기회가 될 수 있도록, 수소 수요 창출과 수소 공급망 확대, 수소 기술우위 확보를 위한 투자 확대에 모든 노력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국내 굴지의 17개 대기업이 참여하고 있고, 한국 딜로이트 그룹이 사무국으로 활동하고 있는 코리아 H2 비즈니스 서밋이 수소펀드를 결성하는 이유도 수소생태계 선도를 위한 투자재원 확보와 수소분야에서의 투자 신뢰성을 제고하는 데 있다. 정부 및 공공부문, 기업 및 산업 생태계, 투자자 모두 한국을 가시성 높은 수소 사업 기회와 안정적 사업 환경을 제공하는 매력적인 투자처로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할 것이다.
정리=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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